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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Feb 05. 2021

내가 여기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니까 02.

대전 고려당 헌책방 장세철 할아버지

“대학교수님들이 정년 퇴임할 때 가지고 있던 책을 정리해. 그중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책도 많지. 그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와.”



“헌책방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야.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찰하는 사람들이 오지. 뜨내기나 단순히 놀러 오는 사람은 없어.”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닌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오는 곳이 헌책방이라 한다. 대부분은 논문을 쓸 때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찾아온다. 예전엔 대학교수들도 많이 찾아와 책을 보고 갔다. 그래서 헌책방에 가려면 내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헌책방은 한 권의 커다란 책과 같다. 커다란 책 속에서 찾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장세철 씨에게 물으면 된다. 그는 마치 커다란 책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수많은 책 페이지 중 원하는 내용을 찾아주는 목차와 같다. 반대로 목적 없이 그 큰 책 앞에 서면 크기에 압도되어 발걸음을 돌리기가 쉽다.

책방 앞에 차 한 대가 멈췄다. 오가는 대화는 짧다. 


“여기 곤충 관련한 책을 찾는데.”

“곤충 도감 책 좋은 게 하나 있지. 기다려봐.”


장세철 씨의 걸음은 느리다. 그 힘든 걸음으로 책방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이층으로 올라간다. 오르는 동안 계속 손에 마른 침을 묻힌다. 그의 손은 벌써 책 무더기 속에 숨은 곤충 도감 책을 고르고 있는 듯 하다. 건물 2층 복도 끝엔 책들이 잔뜩 쌓여있다. 행동은 거침없다. 그 많은 책 사이에서 정확히 곤충 도감 책 3권을 꺼낸다. 교학사에서 펴낸 『한국의 나비』, 『한국의 잠자리·메뚜기·사마귀·대벌레』그리고 아카데미서적에서 펴낸 『원색 한국 나방 도감』이다. 찾은 책들을 들고 손님에게 다시 걸어가기까지 장세철 씨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다. 책 세 권 값은 삼만 원. 거기에 곤충 도감이라 써있는 책 한 권도 서비스로 얹어 준다. 그렇게 장세철 씨 머릿속 서가에서 책 네 권이 팔렸다.

장세철 씨는 찾아오는 손님을 보고 어느 수준의 어떤 내용의 책을 필요한지 판단한다. 곤충 도감이라 쓰인 책은 고려당 앞 책무더기에도 몇 권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게 하기 위해 조금 더 수고한다.


“저 책 원가는 삼만오천 원이야. 그래도 필요한 사람에겐 좋은 가격에 주고 있어. 적당하게 가격을 받아야지. 책이 갈 사람에게 안 가면 안 되지.”


책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데 어떻게 필요한 책을 잘 찾으시나 물어봤다. 원래부터 책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 책방을 시작했을 땐 주로 학교 교과서를 팔았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다른 지역에 나가 필요한 책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다 80년대를 지나 출판이 활발해지며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과거엔 필요한 책을 찾으러 나가는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들어오는 책을 분류하고 흩어져있는 책을 묶는 일을 한다.


“시리즈로 있는 책은 찾아 묶어 놓고, 또 저기에 법정 스님 책들은 출판사 관계없이 함께 묶어 놨어. 또 김홍신의 『인간시장』이란 책은 총 20권이야. 20권이 다 있는 데가 많이 없지. 근데 그게 딱 여기에 있으면 찾는 사람은 또 얼마나 고맙겠어.”


나름의 책방 운영 노하우라고 한다. 손님들이 필요로 할 책을 찾아 묶어 놓는다. 장세철 씨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책은 없다. 그제야 노끈으로 묶인 책들이 보인다. 그저 쓰러지지 않게 묶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장세철 씨 안목으로 공통된 주제로 묶여있다.

수 많은 책 무더기 속에서도 그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 기억한다.


-위 글은 대전 <월간 토마토> 잡지에 썼던 글을 리라이팅 했습니다. -<월간토마토> vol. 157 사람에게 말을 걸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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