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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Feb 28. 2021

내가 여기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니까 03.

대전 고려당 헌책방 장세철 할아버지

4.

장세철 씨의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이다. 부안농고를 나왔다.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해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교사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교사를 하면 먹고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에 합격하자 부안에서 동생 두 명과 함께 올라와 충남대학교 근처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생활은 7년 동안 했다. 연구실 일을 돕기도 했지만, 보수는 적었다. 동생들은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생활비는 빠듯했다. 장세철 씨 혼자 사는 거면 문제없었지만 동생들까지 보살피려니 돈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헌책을 가져다 팔기 시작한 것은 아르바이트로도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함이었다. 노점으로 책을 팔았고 군대를 다녀와선 본격적으로 헌책방을 열었다. 처음 책방을 연 곳은 지금 고려당 옆 건물이다. 고려당이 현재 있는 자리는 원동국민학교 바로 앞 건물이라 임대료가 비쌌다고 한다. 그에게 전공 선택도 헌책방의 시작도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에 후회가 없다. 


“인생이란 건 자기 적성에 맞는 것을 택해 최선을 다하는 거야. 적성에 맞는 자기 업을 찾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지. 덧붙인다면 그 분야에 최고의 일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반 평생 함께한 책방일에 대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장세철 씨의 생각은 명료하다.


“나는 책방 일이 적성에 맞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그래서일까. 장세철 씨는 빠듯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살면서 영어와 일본어는 필수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기회가 좋았다. 국어국문학과에서 배운 문학 작품에 관한 공부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고서를 보는 안목에 밑바탕이 되었고 빠듯하게 시간을 내어 배운 일본어는 당시 많이 들어왔던 일본어책을 볼 때 도움이 되었다. 또 서지학에도 관심이 많아 배운 지식들을 바탕으로 고서를 보는 안목은 책방을 운영하며 더욱 깊어졌다. 그의 삶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데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을 자신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책방 운영은 봉사적인 면으로 하는 게 있어. 사회 속에서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지. 나는 학교 선생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봉사한다는 자세로 이렇게 책방 운영을 할 수 있어. 책방 운영을 하고 싶다고? 하지마. 어려워. 책이 좋아 수집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책방을 운영한다는 건 임대료도 들어가고 자본이 들어가잖아.”


5.

서로 이야기가 편해질 때쯤 장세철 씨는 선물 받은 박카스 한 병을 마신다. 나도 따라 마시고 책방을 찾아온 단골손님에게도 한 병 드린다.

“오늘 기분이 좋아. 좋은 날이야.”

 장세철 씨는 책에 관심 있는 후배가 와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여기 옆집도 챙겨 줘야지.”

고려당 옆 ‘턴턴턴’ LP 가게다. 박카스 두 병을 가져다 주고 레코드 가게 앞 의자에 앉는다. 레코드 가게서 알진 못하지만, 왠지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장세철 씨의 몸은 항상 반쯤 거리를 향해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안부를 묻기도 하고, 들어오는 책을 반기며, 묻는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 골목은 그의 작은 세계 같다. 사방에서 책이 흘러들어오고 또 그 책들은 저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 떠난다. 달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아  지구에 해일이 일어나지 않듯이 장세철 씨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책과 사람이 있을 수 있게 질서를 정리하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책을 제공할 때가 가장 보람 있지. 논문에 필요한 책이 인터넷이나 서울이나 각 도시에 돌아다녀도 못 찾던 책을 사갈 때, 필요한 책을 사가게 될 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면 나중에 맥주를 사 오기도 하고 전화로 감사하다고 연락하기도 하지.


손님이 필요한 책을 요청하면 써 놨다가 다른 책방에 연락해서 찾아주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도 먼 지역에서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이 있다고 한다. 이 작은 헌책방 거리에 앉아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다른 지역에 또 고려당처럼 헌책이 쌓인 책방에 희귀한 책이 있는지 전화하는 장세찬 씨를 상상한다


선생님. 혹시 헌책 시장의 신이라고 아세요? 헌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있지. 그런 게 있지. 집에서 한문 공부를 못하시고 선친들이 한문 공부를 많이 해서 책이 많이 있으면 책을 가져오는 거야. 고물로 내서 1kg에 파는 걸 여기선 권 당 값을 쳐주니 얼마나 좋겠어. 그렇게 들어 온 책들은 또 필요한 사람에게 가게 되지. 책들은 그렇게 움직여.


장세철 씨가 헌책 시장의 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는 더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이야기가 끊기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왠지 오늘 그 신을 만난 것만 같다. 그가 말했다. 책은 내가 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내가 뭘 원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아줄 수 없다고. 고려당에서 그저 책 구경 왔다고 하면 그 어떤 책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자기 적성에 맞는 책이 각자에게 좋은 책이라고 말했던 장세철 씨는 또 나와 같이 책방을 기웃거리는 손님에게 유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찾으시는 책을 말해주세요. 말하지 않으면 책은 안 나옵니다.”


-위 글은 대전 <월간 토마토> 잡지에 썼던 글을 리라이팅 했습니다. -<월간토마토> vol. 157 사람에게 말을 걸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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