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훈주 Oct 16. 2024

3. 너는 내게 몇 번째일까?

대기표는 옆에서 발급받으시면 됩니다.

"니가 연락을 자주 안 하니까 그렇지. 너는 니 이야기를 안 하잖아."


미현의 말에 나는 나중에 밥 한 끼 꼭 같이 하자고 말했다. 밥 한 끼 하자. 그건 일종의 타협 또는 위로였다. 미안한 마음에 보내는 스타벅스 기프티콘 같은 거다.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언제 또 어떻게 볼진 확신하지 못할 때 보내는 것들이 있다.  요즘 자꾸 밥 약속이 늘었다. 말하는 나도 듣는 상대도 그리 기대하지 않는 공수표들이다.


"여튼 내가 사진 올리면 얼른얼른 좋아요 누르라고!"


그럼 그럼. 니가 올리면 나는 눌러야지. 나는 알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미현과 안부를 나눴다. 취재를 끝내고 버스에 올랐다. 미현이 올린 인스타 스토리에 하트를 눌렀는데 곧바로 디엠이 왔다. '너 지내냐'. 말에 괜히 기분이 붕 떴다. 미현은 가끔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곤 했다. 또는 디엠. 그리고 혼자 할 말을 다 하곤 사라졌다. 한때 나 혼자 좋아했던 미현은 지금 내 곁에 몇 번째일까. 아니 너에게 나는 몇 번째 사람일까.


"그때 그 오빠 있잖아. 갑자기 나랑 밥 먹자고 하는 거야. 뭐 사주는 거니까 거절할 필요는 없었지."


2년 전, 미현은 과 선배와 사귀었다. 그날, 밥 먹은 날에 과 선배는 미현에게 고백했다. 갑자기 잡은 밥 약속. 그 자리에서 미현과 과 선배는 사귀게 됐다.


"그냥. 좋았어. 아니, 좀 외로웠던 게 컸으려나."


나는 미현이 과 선배와 사귀게 된 그날, 웃기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미현을 좋아했다. 좋아한다. 이 마음은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며 나 홀로 다짐을 했다. 미현과 대학 생활을 같이 했다. 곁에 함께 걷는 것이 아닌 그림자처럼 쫓아다녔을지도 모른 날들이었다. 삼각 김밥, 핫바, 초코에몽, 제로콜라. 미현이 있을 법한 거리를 서성였다.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설레는 것으로, 길을 걷는 게 좋았다.

미현은 외로워했다. 그 외로움 곁에 서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우리 술 마시자' 그런 카톡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숨었다. '어디 갔었어? 의리 없는 놈' 미현이 언제 무엇을 필요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웃기게도 그래서 피해 다녔다. 그냥 무서웠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날과 선배와 사귀게 됐다는 연락에 나는 이젠 우린 안전한 친구사이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너를 멀리 저 편에 두어 마주 보고 걷는다. 너는 남자 친구가 있으니 나는 안전선을 넘지 않는다. 너에게 나는 밤에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가끔 내게 밤에 연락을 해도 된다. 자니? 아니야. 그냥 심심해서.


"그래서 우리 언제 만나?"


잡다한 감상을 끝내고 버스 내릴 때즈음 가현에게 전화가 왔다.


"글쎄. 다음 주에 한번 시간 되지 않을까?"

"아니야. 다음 주는 없어. 다음 주, 다음 주 하다가 그냥 끝난다니까. 내일이나 내일모레 중 언제가 괜찮아?"


가현은 자기 마음대로 내일 집에 오겠다며 저녁 메뉴로 가지 덮밥을 주문했다. 내겐 수많은 밥 약속 대기줄이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맨 마지막 대기표를 뽑은 가현이가 대기번호 1번이 되었다.


"이건 새치기가 아니라 오픈 전에 문 두드리고 들어온 거지. 그러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가현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집에 올 때 맥주 한 캔 사간다고 했다.  방 청소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가현과 통화가 끝나고 카톡을 보니 미현에게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내일 시간 있어?"


미현은 매번 이런 식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 많았다. 그럼 나 혼자 그 답을 찾으며 애쓰곤 했다. 나는 매번 핸드폰 앞에 서서 대기번호를 뽑는다. 종이엔 대기번호가 없다. "그냥 기다리셔요." 핸드폰이 말했다. "그럼 나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나는 묻는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죠. 저는 그저 대기번호가 있다는 것만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핸드폰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는다. 미현은 매번 알 수 없는 말로 대기번호를 주곤 했다. 나는 가현이가 생각났지만, 그래서 미현이 톡이 무엇을 원하든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어느새 가현의 가지덮밥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방 청소 생각도 희미해져만 간다. 미현 얼굴이 떠오른다. 핸드폰은 한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나는 웃는다.


나는 네게 몇 번째일까.




이전 02화 2.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