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에 뜬 '생일인 친구'를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규빈을 처음 만난 건 20대 대부분이 그렇듯 대학교 동아리 었다.
칵테일 동아리. 어른이 되면 좀 근사하게 술을 마셔 보고 싶었다. 칵테일 바를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괜히 칵테일 바 문을 열기 무서웠다. 그게 뭐라고.
그래서 들어갔다. 한번 하는 대학 생활 재밌게 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칵테일 동아리.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술 마시며 여자 한 번 꼬시고 싶은 남정네들이 한 번씩 거쳐가는 동아리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거의 졸업반 되어서야 알았으니. 나도 참 어지간히 세상의 끝이구나 싶다.
규빈은 내게 처음 연락한 동아리 후배였다. 한 번씩 스쳐 지나가는 동아리였기에 기웃기웃 거리며 몇 번 뒤풀이를 하다 떠나는 후배들이 대부분이었다. 선배라곤 진심으로 칵테일을 좋아하는 몇몇이 전부였다. 그 사이에 나는 나갈 타이밍을 놓쳐 우물쭈물하던 차였다.
대학 동아리는 그린라이트. 정확히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나오는 그린라이트. 개츠비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대학 동아리는 정확히 누군가를 향해 불빛을 켜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개츠비보단 개똥벌레를 닮았다. 제발 한 놈만 걸려라. 개똥벌레. 지겨웠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니. 철없어 보였다. 그렇게 칵테일 동아리는 시험 공부하다 문득 외롭다고 생각될 때 빼곤 잘 가지 않았다.
규빈
"안녕하세요. 가현 선배님! 이번 신입생 규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대학생으로 두 번째 벚꽃 구경을 할 때였다.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낯선 번호로 카톡이 왔다. 반반한 얼굴의 카톡 프사. 풋풋한 얼굴이었다. 아이고 귀여워. 근데 얘는 누군데 나한테 선배라고 연락하는 걸까. 봄이 되고 개강을 하며 괜히 가슴이 들떴다. 가끔씩 선배 이름을 잘 못 기억해서 단톡에 있는 다른 선배에게 찝쩍거리다 놀림감 되는 애들도 있었다. 그것도 나름 재밌는 구경거리였지만 그러면서 외롭기도 했다. 내겐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게 누군가 선배라며 카톡을 했으니 그건 정말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사람을 만나 반가운 무인도 속 조난자. 그게 나였다.
처음 연락을 받고 규현이 누군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개강 후 여러 술자리를 기억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애는 없었다. 과 후배는 아니고. 스터디 사람도 아니고. 우선 대강대강 인사 톡을 보냈다. 일단 얼굴은 잘생겼으니까. 누군지 잘 알지 못해도 대화는 가능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서로 제대로 모르고서 카톡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설마 얘가 동아리 후배일 거란 생각은 못했다. 나중에 규빈이에게 이번 M.T때 오냐는 톡을 받고서야 이 친구가 칵테일 동아리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땐 그렇게 적당히 거리 두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 사회생활이란 게 좀 무섭더라고. 사실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데 다들 웃으면서 다가오고 그랬으니까."
퇴근길. 어쩌다 만난 규현과 나는 어느새 새우 파스타를 말고 있다. 나쁘지 않다. 게다가 생각도 못한 공짜밥이니까. 현 오빠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떠나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겨. 그렇게 서로 얼굴 한 번 안 보고 열심히 연락했으니까. 나도 그때 모르는 사람이라도 선배, 선배 하면서 연락하니까 설레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어. 그때 엄청 떨면서 번호 교환을 했었으니까."
"뭐야. 그런 거였어? 괜히 미안해지네."
"뭘.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그때 그렇게 규빈이와 얼굴도 모른 체 시작했던 카톡은 나중엔 서로 고민 상담까지 하게 됐다. 가끔은 잘 모르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답을 알지 못해 비워 둔 공란은 내 상상을 채울 수 있다. 만약 내 상상이 틀리더라도 잘 모르는 사람이니 쉽게 연락을 끊으면 그만인 거다.
"규현아. 근데 요즘 뭐 하고 지냈어. 너도 연락 한 번 안 했잖아."
"그냥. 그랬지. 어른이 되다 보니까 가끔은 소중한 것도 일부러 잊어야 할 때가 있더라고."
규빈이는 특유의 눈썹을 내리며 웃는다.
"응?"
"내 감정이 남에겐 부담이기도 하더라고. 그럴 때 있잖아. 카톡 '생일인 친구' 목록에 뜨는데 이젠 생일 선물을 보내면 안 될 거 같은 느낌. 걔는 날 잊었을 텐데 하는 거."
규빈이는 변한 게 하나 없구나 싶다.
"누나. 자요?"
"응. 아니. 왜?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을 다하고?"
"있잖아요. 가끔 연락하고 싶어도 저는 참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나 혼자 막 슬퍼져."
"괜찮아. 대학 생활이 아직 낯설어서 그래."
"그렇겠죠?"
"그럼. 나도 그랬어. 막 과방 들어가기 무섭고, 또 친해지고 싶은 데 걔는 날 어떻게 생각하나 무섭고. 나도 그랬지."
"그렇죠? 괜찮은 거겠죠?'
"그럼. 괜찮아.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래요. 괜찮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