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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Oct 14. 2024

2.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는 꿈에서 본 걸 자주 사실로 착각하곤 했다

나는 가끔 일상과 상상이 뒤섞일 때가 있다. 꿈에서 본 걸 사실로 착각하곤 한다.

소설 같은 삶보단 존재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살아 있는 것을 찍고 싶었다.




택시를 탔다. 엄마는 결국 옳았다. 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취미로 즐기는 거야.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되었어도 새벽기도를 꼬박 나갔다.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엄마의 신앙 간증은 내 목을 졸랐다. 엄마는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했지만 그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있었다. 버스는 1,500원, 택시는 1만 원. 시간은 40분과 10분. 꿈을 찾아 일을 찾아다녔지만 지갑은 얇았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는 날엔 뒷좌석 중앙에 앉았다.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야.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택시 안에선 유튜브 영상이 한창이다. 누군가 구속됐다는 뉴스 영상이다. 처음 듣는 소식이다. 나름 매일신문을 챙겨본다 생각했는데. 난독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도 난독증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와 동일 선상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버리곤 했다.

"그러니까 술을 작작 마셔야지."

가현이 말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난독증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긴 하다.

"물 무서워하는 물고기, 태양을 사랑한 눈사람, 추위 많이 타는 철새."

실없는 말을 하면 가현은 파하하 하고 웃었다.


 택시 기사 중얼거리는 말에 잠자코 있었는데 그 침묵은 일종의 동의였는지 그는 요즘 세상이 걱정스럽다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는 분개하고, 슬퍼하며 또 웃긴 일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파여 있다. 늦은 출근으로 마음이 급한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들으면서도 그의 주름이 마음에 걸려 적절한 공백에 맞장구를 쳤다. 얼른 도착했는 면 좋겠는데. 다행히 그의 독백 아닌 독백은 전화벨이 울리며 끝났다.


"그래. 잘 들어갔고? 힘들면 한 병 더 마셔. 그렇게 하면 개운해.”


택시 기사 얼굴이 백미러로 보였다. 그의 눈주름이 보였다. 자글 했다. “주름은 살아온 길이야.” 민수 형은 말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햇빛을 피해 살아. 그러면 최소한 피부 늙는 건 더디니까.” “에이. 살면서 어떻게 해를 피해요.” 시답지 않은 이야기였다. 민수 형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캐나다에선 극야를 볼 수 있대. 그리고 오로라도. 지구 구멍이 뚫린 곳이지." 민수 형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모든 소식이 끊겼지만 가끔씩 그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유튜브 영상에선 아까 구속 관련 이슈로 패널 간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택시 기사는 전화를 마치고 다시 독백과 같은 나라 걱정을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8개월 전 영상이다. 팽팽한 신경이 툭 끊긴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차는 어중간한 갓길에 섰다. 뒤에서 차들이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린다. 휘적이며 얼른 차에서 내린다. 카메라 가방을 손에 꽉 움켜쥔다. 오래된 가게 촬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찍어와 주세요. 의뢰인은 상실감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고 했다. 그러면 혹시 참고할만한 쓰신 원고를 보여줄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건 안 돼요. 제 생각과 상관없이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찍어 주세요. 그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다음 달에 보자고 했다. 명확하지 않던 일에 머릿속에서 뜬구름만 지나다 이제야 부랴부랴 일을 해보겠다 나섰다. 

조금 걸어 도착한 가게는 문이 닫혔다. 오래된 레코드 가게. 예전 김동률 6집 앨범 CD를 산 곳이다. 다음 앨범이 나오면 그때도 사러 오겠다 했었는데 지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김동률 6집 앨범 다음 앨범은 2018년에 나온 EP 앨범이었다. 타이틀 곡은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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