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모른다 할 수 있어야 대인배라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소인배다. 길을 몰라도 절대 묻지 않고 버스 타고 이동할 때도 버스번호 헷갈리면서 전국 버스 앱을 열 지언정 묻지 않는다.
커피머신을 선물 받았다. 사용설명서를 읽고 따라 하니 대충 커피가 나왔다. 일주일간 체험 후 베란다 장식장 속으로 들어간 커피머신.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굳이 귀찮게 커피머신을 이리저리 써볼 수고를 택하겠는가?
방법이 번거롭고 어려워서 아예 보이지 않게 치워버리자 싶었다.
가을이 와서 소국 한 다발을 샀더니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 식탁에 예쁘게 올려놓은 국화 옆에서 우아하게 새끼손가락 뻗은 채 커피잔을 쥐고 쇼팽의 음악을 듣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왕이면 라테를 만들어볼까? 사용설명서가 사라졌다. 이런. 당황하지 않고 부딪혀보자.
1. 일단 전원 버턴을 누르고 커피를 먼저 내린다.
2. 우유 반잔을 얌전히 컵에 따른다.
3. 거품기를 컵 속에 넣고 거품 전원을 켠다.
4, 쉬익 쉬익 요란하다. 자고 있는 남편이 깨지 않게 마음은 조용조용 일을 끝내고 싶다.
5. 대충 거품이 생겼다.
6. 취향대로 커피를 부었다.
7. 라테가 완성되었다.
8. 인증숏을 남긴다.
이렇게 나를 고군분투 끝에 라테 한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새끼손가락을 뻗쳐 엄지와 검지로 우아하게 컵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기가 지니, 쇼팽 음악 틀어줘."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하루 세 번 커피를 영접할 용기가 생긴다.커피 향을 즐겨본다. 그윽하다. 따스하다. 나른하기까지 한데. 누군가는 각성을 위해 커피를 마신다는데 나는 왜 더 졸릴까?
남편이 일어나 "나도 한잔"해서 다시 커피를 내린다. 아, 뭐지 가만히 있는 커피머신. 이 머 선일이고! 좀 전에는 잘 됐는데. 커피 모양이 뜨는 버튼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뜨거운 물만 거품기를 통해 샌다.
아, 나는 커피머신을 잘 모릅니다. 모르는 게 확실해요. 네이버를 뒤져 겨우 사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