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옷을 꺼내 입었다. 낮 기온이 25도라고 옷을 제대로 입으라는 남편 말에 하늘 하늘한 여름옷을 입고 외출했다. 낮동안 잘 먹고 잘 놀다가 저녁무렵 으슬으슬 춥고 몸이 찌뿌둥하다. 비타민 다섯 알을 입에 털어넣고 물 한잔을 마신다. 좀 나아지겠지. 그러다 잠이 들었다. 남편이 퇴근해오길래 국을 데우라는 말을 한 기억이 있는데 눈 뜨니 새벽 4시. 도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고3 딸이 오는 것도 못보고 잠이 든걸까? 어제 사 둔 만두와 곰탕은 제대로 챙겨먹은거야? 혼자서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간다. 국이 절반만 남아있는걸 보니 잘 챙겨 먹었나보다. 아깝다. '그 집 만두 손만두여서 맛있는데 '
오랜만에 넷이 모여 정열을 다해 수다를 떨었더니 몸이 견디질 못한다. 이제 이야기도 쉬엄쉬엄 해야겠다. K이야기 또 다른 k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아이구 이제 순서를 정해 놓고 이야기도 풀어야겠구나. 플래너가 필요하다. 내 안에 있는 기억 저장소에는 빨강 파랑 구슬이 가득한데 버튼 하나 누르면 우르르 이야기가 쏟아진다. 어제는 빨강 구슬을 꺼내 잘못한 일을 바로잡을 이야기로 한 시간을 보냈다. 파랑구슬 속에는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과의 어여쁜 기억이 가득가득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듣는 사람의 태도가 이야기 흐름을 좌우한다. 귀기울여 들어야한다. 귀를 기울이다못해 상체도 나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그렇게 차마시고 밥먹고 하다보니 오후 시간. 나의 오후는 이야기꽃 피우기.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한기가 든 것처럼 아파서 온수 찜질팩을 배 위에 올리고 누워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나보다.
할머니가 마당 한 쪽에 벽돌을 놓아 만든 가마솥 아궁이가 보인다. 할머니는 수건을 머리에 쓴 쪽머리다. 고개를 숙여 불을 지피다가 가마솥 뚜껑을 연다. 솥뚜껑은 묵직하다.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밀어내듯이 뚜껑을 내린다. 복닥복닥 국물이 끓는 소리가 난다. 봄비 오고 나서 보던 물거품들처럼 일제히 뽁뽁 소리가 나더니 우윳빛 자태를 뽐내며 밥상 위에 올랐다.
"한그릇 무라. 이거 밥말아서 한그릇 마시면 감기 그거 금방 낫는다. 어서 무라"
할머니가 수저를 들고 재촉해서 나도 마지못해 먹는 시늉을 한다. 아 그런데 너무 맛있다. 보기에는 허옇게 쌀뜨물 같아 보이더니 뭔가 입안에서 감기는 맛이 있다. 내가 심하게 아프거나 힘이 없어 보이면 할머니는 말없이 가마솥을 씻는다. 겨울 호박죽 끓이고 나서 반들 반들 닦아놓으시더니 다시 손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곰국이 한 솥 잔디밭에 앉아있다.
꿈이다. 아 혀끝에 아직 곰국 맛이 남아있는데 , 할머니는 언제 또 보나? 깨지말지. 목이 따끔거린다. 물을 마시고 비타민 다섯알을 다시 털어 넣었다. 가스 불을 켠다. 복닥복닥 곰국이 끓어오른다. 썰어놓은 잔파와 대파를 파파팟 집어 넣었다. 불을 끈다. 가장 아끼는 뚝배기에 곰국을 팔부만 뜬다. 파향이 파~~~ 번진다. 그래 이맛이야. 국물이 끝내줘요 온갖 찬사를 갖다 바치고 싶다. 이제 감기 안녕. 몸살 저리가.
(곰 탕 한 그릇 비타민 다섯 알) 새벽 글쓰기 시간이 즐겁다. 두 번 째 책 제목으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