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아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맞더라도 우산 안에 몸을 숨긴 채 젖는 발아래가 질퍽거리면 이내 황급해진다. 때론 차로 이동하면서 와이퍼 가득 물줄기를 흩날리어 뿌연 시야를 뚫고 음악 소리와 비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직장에서 또 어떤 날은 집에만 꼭꼭 숨어 나가지 않는다. 그저 창을 따라 흐르는 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내가 온몸으로 흠뻑 비를 맞았다. 아이들과 휴식 차 방문한 풀빌라에서 신나게 놀다 저녁에 이르러 세찬 장대비가 쏟아지며 하늘길이 열렸다. 도무지 그칠 길이 없는 비로 수영을 그만할까 하다가 오히려 비를 맞으면서 물 안에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비를 피하기보다 잔뜩 맞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이것도 추억이다 싶어 나는 두 팔 벌려 하늘을 맞았다.
내리는 비가 수면 위로 튕겨져 파도를 만든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비는 온통 나의 일부가 되어 조금씩 스며들더니 이내 나의 몸을 퉁기며 고스란히 나를 만들어 간다.
비를 맞으려면 전부 내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찝찝함은 사라지고 어느새 나도 엄마 뱃속 만물의 생명을 이어받은 아기의 축복처럼 가까이의 호흡을 받아들여 두 팔 가득 유영하며 천천히 흐르게 된다.
비는 온 세상 빛깔을 그대로 품었다. 초록 위 나무에는 초록을 주고 노란 풀꽃에는 아담한 노란빛을 투명하게 내어 준다. 나의 빛깔은 그대로 비가 되어 천천히 품어 흐르던 시간이 되었다. 비와 내가 하나 된 날의 수영은 물이 나인지 내가 물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렇게 흘러간다. 나의 향기마저 눈앞에 이른 바다까지 흘러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