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역지사지란
♧ 인생을 좌우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하면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p.115
♧ 세종의 ‘뿐’ 정신은 삶의 자세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강하게 드는 생각 중 하나가 ‘자세’다.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도 자세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삶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117
♧ ‘뿐’ 정신은 위기爲己다. 위기爲己는 ‘자기를 위한다’는 뜻이다. p.117
♧ 무든 생명체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p.117
♧ 세상에는 스스로 말해야 할 것이 있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p.118
♧ 부모의 위대함은 자식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원해서 낳은 자식에 대해 책임을 다할 때 빛난다. p.118
♧ 『대학』의 8가지 공부 방법 중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각각 다른 공부가 아니라 결국 하나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닦는 일은 곧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일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남을 위하게 된다. p,120
♧ 나무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나무의 치열한 삶은 『중용』의 성실이라고 할 수 있다. 성실은 하늘의 도리이고, 성실하려는 노력은 사람이 도리다. p.121
♧ 나는 일을 하면서 늘 즐거운 마음을 갖는다. 어떤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위해서는 ‘뿐’ 정신이 필요하다. ‘뿐’ 정신의 실천을 위해서는 모든 일이 나의 몫이라는 철학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이 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 p.121
♧ 자신이 맡은 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 절대 남을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 p.123
♧ ‘뿐’ 정신인 위기爲己는 절대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않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이다. 그래서 ‘뿐’ 정신은 삶의 등재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드는 벼리綱다. p.125
* 벼리綱 : 어떤 일에 있어서 근본이나 뼈대가 되게 하는 것
<나의 생각 따라가기>
위기를 통해 자신을 먼저 위한다. 자신을 위함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이다. 이기적은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에 그치나, 이타적은 타인을 위한 선에 바탕이 되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위하면 자연스레 타인의 삶 역시 소중하게 생각하여 허투루 보아가지 않는다. 이타적인 것을 행하면 결국 내게 돌아온다. 물질적이 것이 아닌 행위의 뿌듯한 감정 안에 소명은 빛을 발한다.
위기를 통해 나를 위하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마음을 지니려면 성실해야 함을 나무는 알려준다. 성실하다는 것은 남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애써 나서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채워진 물그릇은 그대로의 정갈함이 있기에 고요한 파동은 그대로 전해진다. 나의 갈증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갈증을 풀어준다. 성실은 어떤 것을 대할 때 타인이 아닌 내가 가장 먼저 보아 가는 나이다. 스스로 가져가야 하는 것은 내가 먹는 마음가짐과 행동하여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 '뿐'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자신을 진정 위하는 방향으로 즉 부끄럽지 않을 나로 걸어가는 것'뿐'이다.
주어진 일에 그저 해야 할 이유만 찾아가고 불평만 가득하다면 그것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불평이 서린 일은 재미가 없고 마음의 기울기와 빛깔 자체도 흐릿하게 달라진다. 어떤 일이든 나에게 주어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가 결국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고 여겨진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하루로 잘 살아가 보자. 잘 쉬어가는 토닥거림을 듬뿍 주면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잘 받아들여 갈 '뿐'이고
두려움과 힘겨움 안에
한 발짝 용기로 내디딜 '뿐'이고
그리하여 조금씩 성장해 가는 오늘로
쌓여가는 내일을 맞이할 '뿐'이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웃고,
잘 생각하고 잘 실천함으로써
오늘 주어진 하루에
나만의 치열한 성실로
나를 맡기어갈 '뿐'이고
♧ 늘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p.128
♧ 식물을 관찰하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보통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p.128
♧ 사계절 산길이 늘 새로우려면 다른 존재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에서 아무리 큰 변화가 생기더라도 소용이 없다. p.128
♧ 낯선 길에서는 무엇보다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처음 찾는 길은 시작부터 흥분된다. 과연 길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길은 어떤 모양인지, 길가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는지 등 궁금한 게 셀 수 없이 많다. p.129
♧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는 뜻의 역지사지를 식물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식물을 상대방으로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p.134
♧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실체를 자신과 같이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는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다. 인간이 어떤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p.134
♧ 사람들이 꽃을 꺽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눈다면 나무가 얼마나 좋아할까. 식물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로하는 지름길이다. p.135
<나의 생각 따라가기>
나무의 삶을 돌아본다. 가까이의 행복을, 진리를 나무와 식물과 온 자연은 때마다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제때 시선을 두고 보아 가고 사랑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기보다 스쳐 지나가기 바쁘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은 삶이 녹록지 않고 여유가 없다. 휴식이 필요할 때 위안을 줄 수 있는 고즈넉한 자연을 일부러 찾아가며 힐링의 만들어가지만 정작 내 주변에 피고 지는 풀꽃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비밀을 품은 채 그 자리에 있기에 당연함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절기를 따라 흐르고 계절마다의 섭리를 진귀하게 품어가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잘 알아야 역지사지가 통한다. 역지사지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방향은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역지사지를 품지 않고 타인의 역지사지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자. 나의 아픔은 곧 타인의 아픔임을 알아가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것 역시 역지사지다
나무처럼, 꽃처럼, 식물처럼 온통의 자연은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의 존재로 다해간다. 꽃들에, 풀잎에, 나무처럼 나도 일상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를 잘 보아 가보자 다짐해 본다. 존재가 있음으로 세상이 푸르고, 밝아진다. 우리가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