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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하는 말

하나하나 키워가는 마음

by 현정아

내 손은 작다. 엄지손톱은 못생겼다. 손톱 길이가 짧은 데다가 옆으로 넓게 퍼져있어 손가락까지 뭉툭하다. 어릴 적 나는 엄지손가락을 네 손가락 안에 집어넣고 다녔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손톱을 길러봐도 소용없었다.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 그것은, 어린 나에게는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였다. 손가락으로 하는 게임은 피했고, 친구들 앞에서 손을 내미는 일은 최소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으로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뜨개질이며 만들기도 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면서, 손가락만큼은 늘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위축되고 방황하게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와! 손재주 있다! 엄지손톱이 이렇게 생긴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대!”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려내고, 뚝딱뚝딱 만들어가는 일이 점점 재미있었다. 재미는 흥미를 이끌어 가고, 흥미로운 일들은 일상을 소유하는 마음으로 꽉 차기 시작했다. 점점 손가락을 향한 마음이 열려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됐다. 마치 구름 위에 폭신하게 올려진 부드러운 깃털처럼 뽀송해진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 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처음으로 내 손이 좋았다.

그런 내가 간호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손을 감추기 급급했던 내가, 지금은 손을 가장 먼저 내보이는 일을 한다.


주사를 놓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손가락이 마주하는 힘이다. 그중 유난히 잘 보이는 것이 바로 엄지손가락이다. 환자에게 손을 내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도 나의 뭉툭한 엄지손가락이다.


작은 주삿바늘을 손끝으로 살며시 잡고, 검지와 엄지에 적당한 온도를 담아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다. 신중함과 섬세함을 싣고 간다. 결국 ‘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것에 대해서. 내가 느껴가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내 마음이 열리면 손도 그곳을 따라간다. 내가 행하는 일은 손이 나서서 서슴없이 해준다.


못생겼다고 여겼던 손가락 하나, 지금은 생명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가장 큰 자랑이다.

알코올 솜에 건조해지고, 손소독제에 화끈거리며 거칠어지기도 하는 손이지만, 그 손이 닿는 곳마다 진심이 스민다. 유리 앰플에 베이기도 하고, 바이알 뚜껑을 따다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그 모든 훈련과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거친 손이지만 다정하게,

못생긴 손이지만 믿음직하게,

오늘도 내 손은 환자 곁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제는 당당히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가장 먼저 보이는 손으로 환자를 만나고,

간호하고, 마음을 전한다.


힘든 일들이 줄줄이 이어져도, 나는 기어코 견뎌낸다. 그보다 더 큰 뿌듯함이 자리한다.

내가 이 손으로 하나하나 키워온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에.


그만큼 내 손은 사랑이다. 환자 손을 맞잡아 기운차게 이어진 사랑을 여전히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며 간호로 답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오늘도 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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