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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라는 계절을 ‘훨훨’ 날 준비

청년의 계절은 여름만이 아니다

by 현정아

다시’라는 계절을 ‘훨훨’ 날 준비


내 나이 마흔아홉. 아무것도 모르는 오십 대의 시작이 얼마 안 남았다. 마흔을 살고 있는 구 년 동안을 돌아보면서 난 그만큼 시절을 잘 이해하며 살아왔을까? 잘 넘긴 해만큼 돌아올 해도 가뿐히 맞을 준비를 하기에 여름은 힘이 넘친다. 밝고 선명한 기운. 이 여름을 잘 보내야 가을의 풍요로움 뒤의 너그러움을 안아갈 수 있다. 너그러우면 차가운 시련의 문턱을 잘 건너갈 수 있을 거다.


이제 6월 말이면 이곳을 떠난다. 지금까지 몸담았던 6년 8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병원 개원 멤버로 수술실에 발령받고 쓰레기통 하나까지 정리하며 쓸고 닦던 일들, 수술 환자들을 위해 수술실 업무를 익히고 다잡았던 날들, 새로운 업무 앞에 배움이라는 목마름을 몸소 실천하며 행했던 일들, 코로나 시기 경증부터 위중증까지의 환자를 위해 보호복(Level D)을 입고 고군분투하던 일들, 상태변화로 아찔했던 순간들, 두 겹의 장갑을 끼고 주사 처치와 간호를 행하던 일들.


간호부 조직을 이끌며 인력 관리와 실무까지 나서서 처리했던 관리 업무까지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무거운 마음이 교차한 순간 그만두어야 할지에 대한 내적 갈등이 언덕을 이리저리 넘나들었지만, 확고한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나 자신을 살펴보아야 했기에 이곳에서의 멈춤을 택했다.


후회는 없다. 그만큼 ‘잘해 왔다.’ 생각한다. 사십 대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성장했다. 아무도 없던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순간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업무 범위를 스스로 터득하며 천천히 걸어갔던 날들을 칭찬한다. 늦깎이 공부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갔던 시절을 칭찬한다.


새로운 도전 안에 얽힌 일들을 풀어낸 것들이 내 것으로 돌아와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마음 안에 담긴 크기는 비록 나만의 것이 아닌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환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오십을 향하면서 다시 시작될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나는 아직 모른다. 환자에게 행하는 행위와 처치는 다를 것이 없지만 새로운 관계와 환경 안에 나를 놓고 다시라는 처음을 맞닥뜨려야 한다. 나의 기본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기에 스스로 빛날 하루의 일들을 지금처럼 잘 가져가겠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보내는 마음을 굳건히 지켜가리라 다짐한다.


그곳에서도 나의 소신이 연결된 힘을 잘 이어가리라. 간호는 결국 환자를 위한 일이다. 환자가 있어야 간호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하는 말속의 모양을 잘 살펴 뾰족해지지 않을 테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은 미래를 향해 가는, 밀도 있는 삶을 위한 기적과도 같은 날들이 될 것이다. 잘해왔던 순간만큼 또다시 이룰 날들이 기대되는 것처럼 간호로 답하다.



1.jpg 느티나무숲과 고선경 시


2.jpg 끝내주는 인생, 간호로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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