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과감히 나아갈 마음
문을 열다. 이직 후 처음 접한 병동의 광경은 그야말로 전쟁통이나 다름이 없다. 간호사 인력에 비해 간호 처치를 해야 할 환자 수는 몇 곱절 많아 정신이 없다.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처방을 확인하고 시행할 검사부터 수술, 면담, 회진, 투약, 입 퇴원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향하는 손길이 쌓여 전체를 이루는 시간과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일 분, 일 초가 다르게 흐른다.
새롭다는 것 앞에 놓인 일들은 무수한 반복이 이룬 익숙한 일들이 될 것이다. 처방을 확인하고 오더대로 처치를 시행하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는 근무자들 사이에 나는 서 있다. 열어낸 문은 익숙한 곳이 아닌 전혀 새로운 공간이지만 환자를 대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라 오늘부터 나와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익숙했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서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험에 든다. 여기서 적응하기까지는 내가 열어낸 문만큼 나의 행동과 생각에 달려 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여 가는 것은 내 체력을 가장 기본에 두고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좁은 침상에 누워 있는 대부분 환자는 나이가 든 환자들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살아낸 노고가 좁은 병상 안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가장 좋은 체력을 자랑하던 에너지 넘치던 청춘의 여름은 늘그막에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여비를 주고 있다. 호흡은 산소에 의지하고 통증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건드리는 족족 내지르는 소리가 안타깝다. 모두의 인생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다. 퇴색해 가는 기억만큼 작아지는 몸과 주름진 피부가 그것을 말한다. 하지만 나아지는 순간들이 있기에 시간을 포기할 수 없다.
최소의 도움이라도 얼마간이 통증을 지연할 수 있다면 호흡의 양상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환경은 바뀌었지만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이 첫날의 출근길을 부드러이 움직이게 한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몫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환자의 삶 자체를 인정해 주고 싶다. 인정은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차근히 배우고 임하는 것들이 그것을 쌓아가게 한다.
매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것도 좋지만 차분히 기다리고 지켜내는 것이 더 좋다. 나도 진득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아픔에 기대어 다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얕은 지식은 다시 연구하고 익숙지 않은 업무는 계속해 나가면 나의 것이 될 수 있기에 두려워 말고, 욕심내지 말기를 스스로에게 말한다.
PCD 경피적 배액술 (Percutaneous Catheter Drainage)의 약자
유난히 PCD를 하는 환자가 많았다. 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흉수 배액을 하고 호흡을 용이하게 도움을 준다. 흉막강 내 농흉뿐만 아니라 간이나 신장, 복강 내에 농양이 있거나 복부 감염 등에도 이용할 수 있다.
PCD는 국소적인 마취를 적용하여 비수술적인 방법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시술이다.
체내에 비정상적인 물이나 농양이 존재하는 환자에게 카테터(catheter)라는 가늘고 긴 관을 체외에서 환자 몸속으로 집어넣어 내용물을 배액 시킨다. 카테터의 끝이 돼지 꼬리처럼 말려 있다고 해서 Pigtail이라 하기도 한다. 열이 나거나 농양의 크기가 큰 경우 고름을 바로 배출하는 것은 환자 상태를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대로 두면 자칫 패혈증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관을 삽입하면 2일에 한 번씩 소독을 시행하고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하루의 배액량과 색깔 점도, 냄새를 확인하고 삽입 부위에 발적이나 발열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 외 통증 양상과 출혈 유무를 동반해서 관찰한다. 수액 줄을 달고 소변 줄과 PCD 관까지 삽입하여 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환자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 감히 말을 이어갈 수 없다.
젊음의 열기가 비껴간 몸 위로 조금씩 에너지는 빠져나가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 옆에서 24시간을 지켜내는 보호자. 그들의 침상은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좁디좁은 곳이지만 뿜어내는 것들은 이야기로 커진다. 힘들고 외로운 그 마음에 위로를 보낸다.
작은 카테터 하나 자리한 곳마다 손길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가장 가까이에서 묵묵히 귀한 간호를 하는 모습을 그들에게서 찾는다. 간호사만 간호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어깨에 소소한 감사의 마음을 하염없이 보낸다. 간호는 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