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목소리를 덜어내게 위해
비가 오던 5월의 어느 날, 공교롭게 모 회사 체육대회가 예정대로 열리었다.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력을 믿고 호기롭게 달리기를 하던 청년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미끄러운 운동장 바닥에 발을 헛디디는 순간, 온몸이 공중을 가르고 그대로 내팽개쳐졌다. 곧이어 통증이 온몸을 엄습해 오고 청년은 그만 그 자리에 누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오른팔을 움직일 수가 없다. 진한 통증의 무게가 내리는 비처럼 무거워진다. 호흡은 가빠오고 비 오듯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진짜 비인지, 땀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너른 운동장. 사람들은 몰려오고 걱정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응급실로 들어온 남자는 다행히 머리 부상은 없었다. 약간의 스크래치로 인한 상처 외에는 다른 출혈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팔이다. 부종이나 골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오른팔을 쓸 수 없다. 어깨 탈구가 발생한 것이다. 쉽게 말해 팔이 빠진 것이다. 팔과 어깨가 맞물려 있는 관절이 부분적 또는 완전히 빠져나오거나 벗어난 상태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어깨 탈구 시에는 심한 통증과 함께 어깨가 틀어진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대부분 팔꿈치 탈구가 많으나 어깨나 손목까지 움직이지 못해 정확한 통증 발생 위치를 스스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인의 경우 굳어진 뼈이기에 동반된 뼈 손상이나 인대 손상 등을 유념해서 확인해야 한다.
응급실에서 바로 정형외과 과장님의 진찰이 이어지고 강한 진통제를 투여하며 빠진 팔을 제자리로 맞추려고(정복) 했지만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관절을 맞추기에 통증이라는 무시무시한 강도 앞에 견딜 재간이 없다. 강한 진통제도 소용없다.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환자가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치료를 거부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통증 때문이다. 결국 수면 상태에서 정복(탈구된 관절을 원위치로 되돌리는 처치)을 시도하기로 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팔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입원실로 올라온다.
병실 침상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긴장하며 반응했다. 일단 병실 침대를 빼고 누워 있는 이동형 침대 그대로 처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경우 무리한 이동으로 인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이불과 베개로 팔 밑을 감싸 보호하고, 혈액 검사를 하고, 수액을 연결하며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옷은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환자의 동의를 구하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어떤 이유로든 통증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야 했다.
수술복을 착의시킬 동안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하고 팔은 그대로 덮는다. 통증은 개인차가 있지만 정상 범위를 넘어서서 약간의 통증이라도 발생하면 모두의 감정을 좋지 않게 만드는 불편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어서 이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
통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통증 사정 도구를 이용하게 된다. 숫자 개념을 아는 성인의 경우 0에서 10까지의 숫자 중 가장 근접한 정도의 통증 정도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NRS(Numeric Rating Scale)라고 한다. 이 척도는 성인뿐 아니라 수 개념을 이해하는 12세 이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
0점은 통증이 아예 없는 것이고 경도는 1~3점, 중등도는 4~6점, 중증은 7~10점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단지 ‘얼마나 아픈가’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그 안에 놓인 아픔의 질감, 감정, 공포, 무기력함을 다 담을 수는 없다. 그것을 간호사는 함께 읽어내어야 한다. 진통제는 일시적인 통증 완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감정을 지지하는 것 역시 통증 완화에 중요한 요소이다.
“0부터 10까지 숫자로 표현하면, 지금은 몇 점인가요?”
환자는 숨을 고르며 말한다. “8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통증이란 것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결코 가벼이 여겨져선 안 된다. 평가를 통해 적절한 진통제 또는 이완 요법 등으로 중재하고 30분~1시간 경과 후 재평가를 하게 된다. 전후를 비교하고 환자 상태를 살피는 것이 간호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이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가?
통증을 완화하는 것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나타나는 통증 양상으로 해당 부위에서의 문제점 발견),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통증의 완화는 치료 및 간호의 일부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의 본질을 잠시 가릴 수도 있다. 누구나 통증은 피하고 싶은 고통이지만 무조건적인 완화는 오히려 좋지 않다. 그래서 간호는 늘 ‘완화’와 ‘관찰’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통증은 신체뿐만 아니라, 생체리듬 전체를 흔든다. 아프면 맥박이 빨라진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혈압이 치솟는다. 모든 생리 작용이 고통에 반응하고, 그것에 저항하거나 때론 굴복한다. 그리고 통증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온몸이 연결된 하나이기에 각자는 구분된 영역이 아니다. 머리끝에 나타나는 통증이 실은 저 발끝의 문제로 인해 나타나기도 하니 통증의 무게를 잘 가늠할 수 있어야겠다.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간다. 별 탈 없이 정복이 잘 되어 귀한 팔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아픈 목소리를 잘 읽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수술실로 향하는 그를 응원하며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