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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티 Dec 23. 2019

이런 이별 같은 퇴사

전남친과 헤어질 때도 안 울었는데

팀장님께 퇴사 통보를 알린 후 나의 퇴사는 생각보다 속전속결 빠르게 진행되었다. 퇴사의 첫 번째 관문은 회사 리더들과의 면담이었다. 내가 속한 캠페인 본부를 총괄하고 계신 부사장님과 대표님 면담을 거쳐야 비로소 퇴사가 결정된다.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담담히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처럼, 부사장님과 대표님 면담에서도 똑같이 내 생각을 이야기할 계획이었다. 팀장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니 부사장님과 대표님 면담도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담, 뭐가 어렵겠어?  곳에서 꿈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꿈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가겠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을스스로 되새기또 되새겼다.  




막상 부사장님 앞에 앉으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부사장님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 중 한 명이었다. (연봉 평가 미팅이 아니고서는 부사장님과 1:1로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다,,) 부사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을 총괄하시는 캠페인 디렉터이자, 20년 넘게 광고를 하고 계신 분이셨기에 그런 부사장님 앞에서 “광고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부사장님이 말을 건네셨다.


“그동안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놀랐다. 다른 곳으로 간다니 아쉽네”

“M(부사장님의 영어 이름), 죄송합니다. 오랜 시간 업에 대해 고민했었고, 광고에 확신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관심 있는 산업에 들어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시던 부사장님은 그 어떤 부정적인 이야기도, 만류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정말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써 나를 격려해주셨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도 광고가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지”

“부족함이 많았는데 그동안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업에 대한 고민에 많이 힘들었었거든요.

뛰어난 동료들 사이에서 제가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고민도 되었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고생했다. 자주 놀러 와”


왜인지 고생했다는 부사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휴지를 건네주셔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애써 눈물을 꾹꾹 참고 웃으며 부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쏟아냈다. 오랜 시간 힘들었던 감정들이 복받쳐 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6년이란 시간을 위로받은 기분 때문일까. 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들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 난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다. (물론 감정은 여리긴 하지만) 졸업식 때도 울지 않았고, 친구들이나 동생 결혼식에서도 울지 않았다. 전남친과의 이별 앞에서도 모두가 놀랄 정도로 담담했다. “어떻게 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라고 연신 친구들이 이야기할 정도로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 생각해보니 결혼식 때도 잠깐 울컥했던  빼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눈물을 훔치며 날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안 나다니.. 이럴 만큼 정말 난 눈물이 없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내가, 부사장님과의 면담 후 거의 매일매일 울었다. 대표님과의 면담에서도 울고, 본부장님과의 면담에서도 울었다. 팀장님은 뭘 그렇게 우냐면서 나를 놀리셨고, 난 “그러게요. 눈물샘이 고장 났나 봐요 하하하” 하고 애써 웃어보았지만, 그런 팀장님도 이제 못 본단 생각에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 저녁이면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나 이렇게나 슬픈데,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렇게 퇴사해도 되는 거야?”라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동료들에게 조금씩 퇴사 소식을 알리고, 많은 동료들의 아쉬움과 축복 어린 메시지를 받았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뵙고 소식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차 조금씩 힘들고 슬펐던 마음이 위로되고,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었던 것 같다.


편지 쓰며 또 눈물 펑펑.....


첫회사에서의 퇴사는, 정말 첫사랑과의 이별과 같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감사했던 분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면서도 왜 이렇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별 후 이렇게 좋은 남자는 다시 못 만날 것 같다며 펑펑 울던 친구들의 마음이 비로소 공감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좋은 조직과 좋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너무 슬프고 속상하고, 또 6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지내왔단 생각에 감사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첫 회사를 아무렇지 않게 퇴사한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눈물샘이 메마른 나도 이렇게 펑펑 눈물을 쏟았으니까.



이별 후에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나 역시 퇴사 후에 한 걸음 더 성숙해지겠지?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시작은 아직까지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잘할 수 있을지, 나와 잘 맞는 조직 일지, 일이 즐거울지, 사람들은 어떠할지.. 우리 회사가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동료들이 나에게 불어넣어준 격려와 축복을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 넣고, 새로운 시작을 기꺼이 즐겨야겠단 생각이 든다. 행복을 빌어준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고 고맙다. 나도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새로운 곳에서 따뜻한 영향력을 가득 불어넣는 사람이 되고 싶다.



퇴사를 하루 앞두고, 주절주절 나에게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

6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고 정말 고생 많았어.  

내 선택이 어떤 결과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저 새로운 길을,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너의 담대함 그 자체를 응원해

그리고 어디서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이제 울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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