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년 차에 대리를 달고 난 후 나의 회사 생활은 굉장히 평온해졌다. 모든 일이 처음이었기에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사원-주임 시절을 지나 대리가 되고 나니 업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능숙해졌으며 함께 일하는 후배와 업무를 분배하며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워라밸도 많이 좋아져서 퇴근 후엔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등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연봉도 매년 내가 기대했던 만큼 올라서 금전적으로도 더 여유로워졌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도 가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편안한 회사 생활, 저녁이 있는 삶, 금전적인 만족감. 누가 보면 정말 굴곡 없이 평탄한 직장인의 삶이겠지만 나의 직업적 방황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작은 일이어도 직접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기획하고, 결과를 검증하면서 한 걸음씩 성장해가고 있다 생각했고 성장하는 것이 나를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역할이 누군가의 의견을 딜리버리 하는 것,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 기획자가 아닌 정말 말그대로 커뮤니케이션'만'하는 AE에 머물러있었다.
이상하게 연차가 쌓일수록 나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회사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 한다는 죄책감, 성장이 멈춘 좌절스러운 기분이 나를 지배했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나의 업무적 자존감은 더 이상 채워지지 않고 점점 떨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