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월이 됐다. 일기예보에선 이번 달부턴 따뜻해질 거라 했는데도 아직 겨울의 기운이 짙게 남아있다. 특히 애매하게 녹은 눈이 그렇다. 사람이 거니는 길은 벌써 다 녹은 지 오래지만 나뭇가지엔 여전히 허옇게 눈이 묻어 있다. 바람은 거세지 않아 낙엽은 나무 옆이 제자리인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덕분에 입은 코트를 꽁꽁 싸맬 만큼 아린 날씨는 아니다. 미처 못 다 녹은 눈 사이에 비치는 저 잔디는 아무런 온기도 없는 걸까. 아닌가. 온기가 있으니까 저기만 눈이 녹은 건가. 만져보진 못했으니,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가 쳐다볼 것만 같은 색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지나치는 옷 가게에선 <잊혀진 계절>이 나오고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오래된 음악. 그 조화가 그다지 어울리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이 옷 가게 이름도 <못된 고양이>였지. 도대체 못된 고양이랑 옷이 무슨 상관일까. 흰 대리석에 모던한 가구들로 가득 채운 꽤 공들인 인테리어. 거기에 얹히는 못된 고양이와 잊혀진 계절. 파는 옷들도 그다지 세련돼 보이진 않았다.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조화인 건지 잘 모를 노릇이었다.
부조화란 단어를 자주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내겐 꽂힌 단어를 유독 사용하려고 애쓰는 버릇이 있다. 처음 부조화란 단어를 쓰게 된 건 우연히 본 영상 때문이었다. 뱉고 보니 그 발음이 퍽 맘에 들어 입안에서 계속 굴려봤다. 그게 버릇이 돼 나중엔 틈만 나면 문장 속에 꾸역꾸역 끼워 쓰곤 했다. 그때의 발단도 바로 이 단어, ‘부조화’였다.
“나 그만둔다.”
작년 시월, 해는 다 진 지 오랜 오후 9시쯤이었다. 너는 퇴근하고 오자마자 돌연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둔다고 선언하곤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무언가 찾을 게 있는 사람처럼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박힌 돌멩이처럼 방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오늘 하루 연차를 내고 푹 쉰 나는 앞둔 연휴를 함께 즐길 생각에 들뜬상태였다. 난 네가 집에 돌아오면 내일과 모레 계획을 줄줄이 설명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없어. 그만둘 거야. 나 피곤해. 나중에 얘기해”
“피곤해도 할 말은 해야지. 일단 나와봐.”
“나중에 얘기하자니깐.”
“알겠어. 나중에 얘기하자. 대신에 우선 나와봐. 내가 침대에 눕기 전에 씻으라 했잖아.”
“싫어.”
“뭐?”
“싫다고.”
아무 일도 없다는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아니었다. 평소 피곤할 때 나오는 목소리도 역시 아니었다. 무언가 질려버린, 그동안 억지로 붙잡고 있던 것들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만 같은 말투였다. 단순히 싫증이 났다거나 못 참겠다는 말투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너는 그럴 때면 미묘하게 애교 섞인 짜증을 부리곤 했다. 방금의 말투는 굳이 내뱉지 않아도 곳곳에 한숨이 묻어 있는 듯했다. 마치 말을 이어나가려면 마디마다 짙게 한숨을 내쉬어야만 하는 듯 보였다.
“바로 잘 거야? 그럼 나 소파에서 잘게.”
“응.”
그게 그날 대화의 전부였다. 평소 일이 끝나면 내 옆에 붙어 미주알고주알 누가 어쨌네 뭐가 저쨌네 불평을 토로하던 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난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일단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얘기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날 깨운 건 평소보다 밝은 너의 목소리였다. 어제의 모습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넌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척 다 잊은 듯한 모습으로 날 일으켜 세웠다.
“옷 사러 가자.”
“옷? 아니 너 어제는 무슨 일이었는데.”
“옷 사러 가자! 직장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면접 보러 다녀야지. 정장 사러 가자. 나 정장 오래된 거밖에 없잖아.”
“겨울 정장은 하나 있지 않아?”
“오랜만에 데이트 좀 하자고. 원래 어제 우리 같이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혼자 쉬니까 좋던?”
“그동안 밀린 게임 다 하고 나니까 너 올 시간이더라.”
“어이없네. 누구는 응급상황에 자다 깨서 하루 종일 일하고 왔더니.”
“알겠어. 가자. 까짓 거 옷 사러 가자. 정장은 오늘 내가 사준다.”
“정말? 나 비싼 거 골라도 되지!”
일상 같은 대화였다. 묘한 투정의 너와 과감한 충동의 내가 빚어내는 대화. 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너의 투정 속에 별다른 일은 없으리라 안심하곤 밖에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시월인데도 벌써 매섭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선 백화점을 가자고 주장했지만, 넌 그때 아울렛에서 봤던 옷이 예뻤다며 기어코 그 추운 날씨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쫓기듯이 쇼핑하러 도착한 곳에서도 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게 행동했다.
“이거 원피스 어때?”
“잘 어울리는데 우리 점심 좀 먹고 마저 보자.”
“잘 어울리는데 뭐. 그게 끝이야? 지금 내가 원피스 입은 모습 보고 밥 타령이 나와?”
“예뻐. 예뻐 죽겠어. 근데 우리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니까. 부탁이야.”
“이따 여기 다시 올 거다. 아 저거 맘에 드는데. 점심 뭐 먹고 싶은데?”
너는 평소 옷을 고르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면 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쳐다도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건 매사에 적용되는 점이었다. 너는 대부분의 일에 호와 불호가 확실한 편이었고 그만큼 마음이 드는 일은 결단코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매사 장단을 재느라 결정하는 데에 피곤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는 내게 그런 너의 성격은 꽤 도움이 됐다. 단도직입적인 결정과 행동. 그럼에도 말 한마디엔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게 내가 꼽는 너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유독 넌 이상스레 이 옷, 저 옷 하나씩 전부 입어보곤 했다. 마치 옷 하나를 벗어낼 때마다 몇 시간에 걸쳐 허물을 벗어내듯 애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처음엔 생경한 광경인지라 그만큼 신중히 고르려나 보다 여겼지만, 어느덧 벌써 몇 시간이 지나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내 모습을 대번에 알아차릴 너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내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옷을 고르고 벗는 데에 열중하는 듯 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시작된 쇼핑은 그러고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마치 찾는 게 있다는 듯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네가 정작 고른 정장은 그다지 가격이 나가지도 않고, 맥 빠질 정도로 디자인 역시 평범한 옷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한동안 정적이었다. 대화를 연 건 내 쪽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평소랑 다르더라.”
“뭐가?”
그 한 어절은 줄곧 밝던 오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엔 옷 고르는 데 얼마 안 걸리잖아. 오늘따라 뭔가 집착하듯이 옷을 고르길래. 맘에 드는 옷이 없었어?”
“그냥 신중히 고르고 싶었던 거야. 면접 때 입을 건데 예쁜 옷 골라야지.”
“그런 거 치고 정장 산 거 너무 평범하지 않아?”
“평범한 게 평범하게 된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대화는 금세 제 모습을 되찾아 살짝 장난기가 묻어 있는 듯, 이상할 것 없이 흘렀다. 그러나 내 말 한마디로 다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근데 오늘 고르는 옷 뭔가 다 안 어울렸어. 너 평소 입는 스타일하곤 완전히 다르던데. 특히 그 모자. 너 계속 썼다 벗었다 하던 그 모자는 원피스랑 완전 부조화였어.”
“부조화?”
“응. 아니었어?”
“다시 말해봐. 부조화?”
너의 대화 습관엔 분명 말꼬리 잡는 건 없었을 텐데.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그런데도 넌 애써 무시하고 싶다는 듯 대화를 마치려고 했다.
“됐어. 그냥 가.”
“뭘 그냥 가. 너 어제부터 자꾸 왜 그래.”
“내가 어제 뭘.”
기억 안 난다는 듯한 말투에 기시감을 느낀 나는 조금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제 너 집에 와선 바로 들어가 잤잖아. 늘 내 옆에 와선 이런저런 얘길 다 하던 애가. 무슨 일인데 그래. 답답하니까 그냥 말해. 말해야 내가 뭐라도 해주지.”
“뭐?”
“들어줄 테니까 다 얘기해 봐. 긴 얘기야? 도착하기 전까진 다 끝나?”
“그냥 가. 말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언성을 높인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넌 맥없이 대화를 끝맺었다. 차 안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라디오 소리뿐, 차가 도착할 때까지 너와 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시 대화가 이어진 건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였다. 넌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신난 아이처럼 메뉴를 고르더니 막상 메뉴가 나오자 파스타를 몇 가락 집어 먹고선 내려놨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안 먹어?”
“뭔가 먹기가 싫네.”
말을 마치더니 넌 어제 내가 방문 너머로 들은 말투와 닮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너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너의 얘기는 그러다 어디서 흘러온 듯이 불현듯 시작됐다.
“어제 응급실로 어린애 한 명이 왔어.”
“어제?”
“응”
“마저 말해봐”
“말 끊지 말고 들어.”
너는 지친 말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어제 초저녁이었어. 한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였어. 팔다리 소매가 남루하게 너덜거리는 거치곤 머리가 조금 찢어진 게 전부였어. 그런데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았나 봐. 교수님이 급하게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호자를 찾는데 보호자는 조금 이따 온다고 하더라고. 되는대로 급하게 검사라도 받아야 하니까 링거를 꽂으려 팔을 걷었는데, 팔에 꼽을 곳이 없더라. 팔이 엄청 앙상했는데, 전부 멍투성이였어. 애초에 피부가 보라색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근데 뭐 그런 환자들도 종종 있으니까.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린 술렁이면 안 되잖아. 그러고 몇 분 뒤에 애 아빠가 다급하게 뛰어오더라.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듯이 초조해선 제정신이 아니었어. 수술 설명 하는데도 하나도 집중을 못하고. 응급실에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들은 어차피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거든? 근데 그건 뭐랄까, 죄의식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이기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표정이었어. 생전 처음 보는. 아무튼 애는 급하게 수술받으러 들어갔는데 금세 죽었다고 하더라.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니까 이미 몸 안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손 쓸 틈도 없더래. 어이없지 않냐. 알고 보니까 집에서 도망쳐 나오다가 집 앞에 지나가던 차에 치인 거야. 그것도 음주 운전. 인적이 드문 골목이어서 애는 그 추운 골목에 계속 누워 있었고. 애 아빠는 그동안 뭐 했을까?”
“찾아다닌 거 아냐?”
“찾아다니긴 집 앞에서 치였다니까. 밥 먹고 있었대. 근데 시간이 지나도 애가 안 들어와서 나가보니까 치여 있는 거지. 그다음에 애 아빠가 한 일이 진짜, 듣고서 말도 안 나오더라.”
“어쨌는데?”
“집 앞 정류장까지 찾아갔어. 그 상황에. 그러고 집에 구급차를 부른 거야. 자기가 지금 집에 없는데 애가 연락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미치겠다. 확인을 좀 해달라.”
“무슨 그런?”
“근데 난 그것보다 기억에 남는 게 따로 있어. 그 애 들어올 때 가방 하나가 같이 들어왔거든. 애가 학교 갔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단 거지. 그 애 가방에 잡지가 하나 있었어. 패션 잡지. 나 평소에 자주 읽던 거 있잖아. 그것도 마침 내가 읽었던 거였어. 대충 기억하기론 3년 전 이맘때에 나온 잡지였을 거야. 근데 그걸 몇 번이나 읽었던지 표지가 전부 너덜너덜해져 있더라고. 내 눈에 띈 건 바로 그 표지였어. 그 표지에 있던 옷이 내가 작년 아울렛에 가서 본 옷이었거든. 한창 세일해서 마지막 남은 거라고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내려놨던 거 있잖아."
“뭐지 그게?”
“기억 못 할 줄 알았어. 아무튼 그 표지가 집에 와서도 잊히질 않더라고. 가방에 그거 하나 있었대. 연필도 없는데 그거 한 권. 진짜로… 어이없지 않냐. 딱 그거 한 권이라니.”
“그러네. 어이없네.”
“그렇지. 정말 어이가 없지.”
잠깐의 정적이 지나 너는 다시 입을 뗐다.
“그만하자.”
“뭘?”
“그냥 우리. 그만하자. 이쯤이면 됐어.”
“헤어지자는 거야?”
“응. 헤어지자.”
“갑자기?”
“부조화야. 너 말대로. 부조화”
그 뒤로 내가 너에게 무슨 말들을 되물었었는데도 넌 내 말들을 전부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여지조차 없는 너의 반응에 난 너의 성격을 알고선 금세 입을 다물었다. 그게 그날 대화의 끝이었다. 우리는 먹던 식사를 마무리하고선 다시 차에 탔다. 난 네가 말한 곳에 너를 내려 주곤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하필 결방이었다. 대신에 뉴스를 틀고서는 한참을 멍하니 봤다. 금세 잠이 들었고, 우린 그 뒤로 다신 만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대화를 뒤로 한 채 작년 시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래 만난 것치곤 보잘것없는 끝이었다.
못된 고양이. 지나는 길에 너도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하던 가게 이름이었다. 왜 옷집은 이름이 대부분 저럴까 하며. 그러고 들어간 가게에서 넌 맘에 드는 옷이 많았는지 한참을 옷 가게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옷집에 잠시 멍하니 서있던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스피커에서 나오던 음악은 어느새 다음 곡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나오고 있었다. 밖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안 불던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난 가사를 조금 흥얼거리곤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