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씁쓸함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
오늘의 두번째 영화로 금일 개봉하는 네 편의 영화 중 가장 기대치가 컸던 사울 딥 감독의 <저니스 엔드>를 관람하였다. 영화에 대한 뚜렷한 사전 정보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취향에 들어맞을 것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던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과 씁쓸함을 제법 인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뭔가 생각했던 느낌과 다소 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서도.
1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1918년 3월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소위 롤리가 오랜 친구를 찾아 영국군과 독일군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최전방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구 스탠호프와의 반가운 재회를 기대한 롤리는 중대장이라는 직책의 부담과 전쟁의 공포감에 사로잡혀버린 친구의 달라진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는 한편,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오스본 중위 덕에 전장의 공포를 적응해나간다.
일종의 전쟁 영화인데다가 배경이 최전방인 만큼 화려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기 쉽지만, 영화는 여타 전쟁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단 5일간의 일들만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영화의 주된 장소도 전장의 현장이 아닌 적막이 감도는 참호 내부이다. 더불어 전투의 방대한 스케일보다 전쟁을 겪으며 변화하는 인물들의 심리에 더욱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예상과 다른 전개라는 점에서 조금은 당황스럽게 다가오면서도 이 영화만의 개성을 부여한다.
크게 세 인물의 심리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영화는 스탠호프 대위와 오스본 중위, 롤리 소위까지 제각기 다른 인물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며 끔찍한 전장을 버티고 있는가를 담담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나간다. 특히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롤리와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로 지냈을 스탠호프가 중대를 이끄는 대위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술에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과정은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디테일한 묘사 없이도 인상적으로 담아내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전쟁의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스탠호프 대위를 연기한 샘 클라플린은 <미 비포 유>, <어드리프트> 등 전작에서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를 무척 인상적으로 소화해내며, <어벤져스> 시리즈의 비젼으로 익숙한 폴 베타니의 인간미가 돋보이는 연기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희한하게도 매 작품마다 연기의 극명한 편차를 보이는 에이사 버터필드는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앳되고 어수룩해보이는 외모가 소위라는 직급과 매치가 되지 않아 다소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만다.
정리하자면, 전작 <스윗 프랑세즈>에서도 남녀 간의 로맨스라는 중심 소재 속에서 전쟁의 씁쓸함을 잘 담아낸 사울 딥 감독의 연출이 무척 돋보이는 한 편의 전쟁 영화이자,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흡입력을 자아내는 한 편의 심리극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전쟁의 씁쓸함을 그리는 영화가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보다 확실한 강점이나 매력을 갖는가에 대해선 조금은 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