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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14. 2020

말 것: 조건이 없을 리가 없겠지

어제보다 잘 쓰는 법_75일 차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가수 박상철의 히트곡 '무조건' 중 한 소절이다. 가사와 박력 있는 멜로디가 찰떡처럼 잘 붙는 듯하다. 특히 '무조건'이라는 말맛을 살린 덕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 단어가 노래 가사처럼 시적 허용에 준하는 차원에서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노랫말에 흔히 쓰이는 '설레임'이라는 단어처럼.


시를 제외한 글에서 무조건은 최대한 배제하는 게 옳다. 정확히 말하면 단어의 쓰임을 지양한다기보다도, 필자의 생각에서 의심의 여지를 없애는 태도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애초에 모든 문장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한 '조건'들이다. 이러한 와중에 필자가 이것저것 불문율을 세우고 글을 시작한다? 생각을 강요하거나 논리의 빈틈으로 옮겨질 공산이 크다.


결국 무조건에 대한 여지를 두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안일함'으로 번진다. 읽기 어렵거나 주관적으로 쏠린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설득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반대로 당연한 것도 다시 묻는 태도는 글의 밀도와 논리를 키운다.


고백하건대, 사보 기자가 되고 적어도 1년 차까지는 내가 쓴 글 중 50% 정도가 무조건 투성이였다. 변명을 하자면 사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기업마다 추구하는 비전이 있고, 이는 곧 불문율로 통한다. 예를 들어 A 매체의 경우, '고객' '디지털 전환' '애자일 조직' 같은 말은 무조건의 영역이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독자가 비슷한 의미와 중요도로 인지하는 단어인 것이다.


그렇게 몸에 밴 버릇이 인터뷰 칼럼을 쓸 때 가끔 문제가 됐다. 꼭 설명했어야 할 구간을 건너뛰는 습성이 생긴 것이다. 그럴 때면 팀원끼리 원고를 돌려보다가 내 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나타나고는 한다. 또다시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은연중에 '무조건'을 세우진 않았는지.


다행히 이제 나는 당시보다 덜 오만하다. 글은 독자에게 더 친절해졌고, 적당히 매만지면 제법 의도한 모양새를 갖춘다. 스스로 세운 무조건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조금씩 바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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