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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7. 2020

말 것: 글에는 귀천이 있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8일 차

직업과 달리 글에는 귀천이 있다. 여기서 글이란 기록 중에서도 독자에게 뵈기 위해 쓴 것으로 범위를 한정한다.


글은 필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이 본질을 얼마나 충실하게 갖췄는지로 귀천이 결정된다. 귀천은 다른 말로 '쓰임새'다. 천박한 글은 초점이 필자에게만 맞춰져 있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건 건네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한쪽 입장만을 고려한 글이 매끄러울 리 만무하다. 반쪽짜리 완성이다.


이러한 글은 때로는 자신을 한껏 치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채우기도 한다. 또 남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써주는 글도 여기에 속한다. 결국 이를 통해 진짜 메시지를 숨기고,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독자를 위해 쓰는 글과 자기만족에 쓰는 글이 전달력과  측면에서 차이가 있음은 뻔한 사실이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 중 오히려 천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고인의 뜻을 무시하고 유서를 공개하거나, 방역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오보를 퍼뜨림으로써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전국민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기사를 꽤 많이 접했다.


한편 독자를 위해 갖은 공을 들였으나 천박한 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정보를 전하게 될 때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오보를 낸 적은 없다. 다만 교열 작업 중 팀원끼리 내 글을 돌려보다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발견된 적이 있다. 고백하건대 스위스를 EU 회원국으로 다룰 뻔했을 때다. 가까스로 원고를 수정했으나, 지금 돌아봐도 나의 부족한 상식에서 비롯된 아찔한 경험이다.


인포 칼럼을 쓸 때는 한꺼번에 많은 자료를 들춰보며 글을 쓰게 된다. 나도 모르게 서로 다른 정보를 섞어 다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만약 당시 내가 스위스를 그대로 EU 회원국이라고 다루는 글을 썼다면 여지없이 천박한 글이 됐을 터다.


반면 귀한 글은 공감으로 연결된 필자와 독자가 서로 윈윈한다. 필자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쓸모가 있는 글이다. 필자는 자신이 전하고자 한 바를 확실히 전할 수 있어서 좋고, 독자는 그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여기에서 평소 생각지 못했던 인사이트가 발견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전적으로 필자의 깜냥이다. 글을 쓰며 수시로 지금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독자를 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선비 같이 끄적여놓고는 나는 또 나와 싸우며 써야 한다. 사실 아무렇게나 휘갈기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볼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허투루 쓸 수 없다. 오늘 쓸 글이 자기밖에 모르는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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