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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02. 2020

할 것: 첫 문장은 쓰지 말고 고르자

어제보다 잘 쓰는 법_2일 차

순백색 모니터 화면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막막함이 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지만 결국은 지우는 것으로 끝나기만 할 때. 그럼에도 쓰긴 써야 할 때. 그때마다 특효가 있다고 자신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첫 문장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남의 글을 함부로 가져온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대부분의 경우, 생각이 좀처럼 글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별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머릿속 생각을 흰 창에 하나하나 나열해보자. 지금 쓰려는 글에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싶은지 두서없이 적어보는 것이다. 적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도 함께 적는다. 분풀이라도 하듯 최대한 마구잡이로 써본다.


이렇게 봇짐을 풀듯 펼쳐놓고 그중 첫 문장에 쓸 내용을 고르면 되는데, 대체로 나는 아래 조건을 기준으로 삼는다. 셋 다 만족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보통은 하나만 만족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첫 문장이 나온다.


1. 배경을 잘 설명하는가?

2. 결론 즉 주제를 암시하는가?

3. 주목을 끌 만한가?


이 습관을 들일수록 글을 시작할 때 여유가 생겼고, 나아가 글의 얼개까지 더 쉽게 짤 수 있었다. 글을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도 되겠다.


인터뷰 일정과 마감 일정이 겹치면 괴롭다. 하루 만에 녹취를 풀고 글을 완성해야 하니 몸도 마음도 조급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한 회사원을 인터뷰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피아노에 흥미가 생겼고, 가볍게 시작한 것에 비해 수준급 연주 실력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당시 원고를 쓰기 앞서 내가 처음 꺼냈던 단어들을 최대한 기억 나는 대로 다시 써본다.


한 번 꽂히면 곧바로 해야 하는 성격

평범한 일상 속 사소한 자극에서 시작하는 취미

쇼팽

4년 연주 경력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손이 크다는 게 사실인가?

생각보다 행동, 지금 바로 하는 것. Just do it

도전기


그렇게 나는 1번 조건을 충족하는 단어를 골라 이런 첫 문장을 썼다. ' 2016년 4월 평범한 아침 출근길, 000는 지하철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혹시 다음 문장이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3번 조건도 어느 정도 채웠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첫 문장에서 쓰지 못한 내용들은 거의 다 이후 부분의 얼개를 짜는 데 사용했다.


"스스로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내가 쓴 바로 앞 문장이다." 두고두고 새기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다. 나의 언어로 바꾸면 '써야 써진다' 정도 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첫 문장을 써야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문장을 쉽게 쓰는 역량은 글을 쉽게 쓰는 역량으로 통한다고 믿는다. 이제 고민은 접고, 첫 문장을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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