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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0. 2020

할 것: 낙담한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0일 차

나에게 낙담은 지양점(말 것)이 아닌 지향점(할 것)이다. 단어가 품은 의미 때문이다.


출처: 국립국어원 공식홈페이지(www.korean.go.kr)


사전적 의미대로 낙담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다.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다. 그러면 글을 쓰기 앞서 내가 바라던 바, 즉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고 싶어서, 어쭙잖은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마감이 닥쳐오는데 어떻게든 원고를 넘겨야 해서 등등.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골고루 실패해서 낙담의 재료가 됐다.


내게 유독 취약한 분야가 있다. 매달 사보에 연재되는 여행 기사다. 원래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가보지도 않은 나라와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 정보를 생동감 있게 전하는 작업은 지금도 쉽지 않다.


2년 전 처음으로 맡은 여행 칼럼을 기억한다. '소도시'를 주제로 포르투, 마쓰야마, 타이둥을 묶어 소개하는 글이었다. 각종 여행 칼럼과 실제로 다녀온 이들의 소감은 넘쳐나는데 무엇을 선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마감 일정이 임박했음에도 컨펌을 받지 못해 헤매던 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선배가 응급처치를 해줬다. 정보만 나열하던 지루한 글에 서사가 깔리고 생기가 돌았다.


"나는 왜 저렇게 못 썼을까..." 고민이 깊어지자 내가 이 칼럼을 쓰는 이유를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보 제공에만 초점이 쏠렸음을 깨달았다. 좌절이 낙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독자 입장에서 정보만 그득한 여행 칼럼을 굳이 볼 이유가 없다. 여행사 블로그를 참고하거나 팸플릿을 읽으면 될 테니. 그보다 독자는 지면에 펼쳐진 현지 풍경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길 원한다. 이 점에서 감각을 자극해 몰입을 유도하는 문체가 필요했다. (실제로 의성어, 의태어가 풍부한 칼럼이기도 하다.)


이처럼 낙담은 스스로 목적에 들어맞는 글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만든다. 혼자 보는 글이 아닌 이상 칼럼의 존재 이유와 내 글에 담긴 의도, 둘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리 없다. 때때로 낙담을 거하게 하고 나면 그 간극이 확 줄기도 한다. 고로 어느샌가 나는 낙담을 글쓰기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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