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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10. 2020

말 것: 싫은 소재에 선 긋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40일 차

'호불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여럿인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단호하게 가릴 수 있다니…. 곱씹을수록 취향이 뚜렷해지고 매력이 생길 것만 같은 3글자다. 그런데 글쓰기에서만큼은 호불호를 따진 결과가 탐탁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을 고집하다 보니, 스스로 쓸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는 필자를 확장하는 속성이 있다. 기꺼이 쓰다 보면 생각도, 관심도, 의지도, 실천력도 깊어진다. 이러한 와중에 필자가 '나는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없어' '빈곤은 사회학자들이나 연구하는 주제 아닌가?'라는 식으로 소재에 선을 긋는다면? 해당 소재는 언제까지고 쓰지 못할 분야로 남거니와 글쓰기의 덕을 보기도 요원해진다.


자, 입바른 소리는 여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불호'가 있게 마련이다. 월간 사보를 만들다 보면 분기별로 2번 정도는 그런 주제를 할당받는다. 이내 하기 싫은 일을 최대한 미루는 습성이 나를 잠식하는 시기다. 급기야 '마감신'이 빙의한 뒤에야 정신없이 써 내려간다. 신내림을 받고 급하게 쓴 원고는 금세 티가 난다. 수년째 호흡을 맞춰온 팀장님과 교열 선배는 내가 어떤 글을 쓰기 싫어하는지 꿰고 있다. 숨기고 싶지만 숨기지 못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은 뒤, 나는 뇌를 속이는 방법을 찾았다. 한낱 정신 승리가 아니다. 실천하기 쉬우면서도 효과가 뚜렷하다. 바로 '만트라'를 외는 것이다. 이는 자기계발서에 심심찮게 나오는 말 중 하나다. 고대 인도어로 '진리의 말'이라는 뜻인데, 요즘에는 '짧게 외는 주문' 정도로 흔하게 통하는 듯하다.


나는 불호와 마주할 때 '그럼에도 우리네 이야기'라고 만트라를 왼다. 때로는 메모장을 열고 빠르게 타이핑을 쳤다가 지우기도 한다. 말뜻을 풀자면 비록 당기지 않더라도, 독자를 위해 내가 펼쳐놓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자각하자는 뜻이다. 따라서 글을 쓰는 순간만이라도 흥미보다 한 단계 낮은 정도의 관심은 가져보자는 다그침이다.


실제로 필자가 쓰는 글는 좋든 싫든 필자의 세계 그 자체다. 아무리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인용문을 가져오더라도 문맥에 녹아든 순간 그것은 필자의 세계다. 그럼에도 우리네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이 만트라를 3번 정도 되뇌면 책임감이 발동한다. 그 책임감이 최소한의 관심을 떠받친 상태에서 계속 쓰면 된다. 기운이 약해도 괜찮다. 다시 3번을 외면 그만이다.


결국 갖은 수단을 동원해 지금 펼쳐놓고자 하는 세계에 공감한만큼 내용의 깊이를 갖출 수 있다. 나아가 이를 담담한 문체로 푼다면 절제가 돋보이면서도 충실한 글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나의 만트라는 뇌를 속이는 게 아니라 쉬이 잊고 마는 사실을 되짚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전부 다 그럼에도 우리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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