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무번째 이야기
나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잘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놀이터 옆 의자에서 책을 보며 아이들 노는 모습을 가끔씩 살피는데 아주 위험한 행동이거나 다른 사람, 친구에게 피해 주는 행동 외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도록, 또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켜보는 쪽이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이 하는 놀이가 공정해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배우길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지적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 될 때도 많다. 오랫동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면서 주도하는 아이들이 보통은 늘 주도하게 마련이라는 걸 보았다. 목소리가 큰 아이가 놀이의 규칙을 만들거나 팀을 나누는 일도 흔했다. 지켜보는 어른들은 "저 아이가 리더십이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수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그 아이의 재능 일지 모르지만, 다른 친구들에 대한 존중, 모두가 공평한가에 대해 생각할 힘을 갖도록 하는 건 놀이에서 꼭 배워야 할 일이다. 그 아이가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라도.
문제는 놀이터에서, 놀이 시간에 일어나는 불공평한 일들이 어떠한 제재 없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 그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저 친구가 저렇게 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그동안 내가 규칙을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도 내 말을 따라야 같이 놀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상황에 아이들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더라도 이런 과정은 위험하다. 그건 옳은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게 맞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조금씩 아이들 놀이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요즘 피구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아줌마 피구 해요! 엄마 같이 피구 해요"라고 말하길래 "그래? 그럼 팀 어떻게 정할까?" 아이들 의견을 물었다. 원래 해왔던 대로 한 친구가 "야 OOO이랑 나랑 같은 편 하고..."라고 말하길래 "음.. 공평하게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하고 알려줬다. "우선 여기서 제일 어린 친구 두 명이 각각 한 명씩 다른 팀 하고. 아줌마랑 여기 형아가 나이도 많고 잘하니까 각각 한 명씩 다른 팀 하는 게 좋겠지?" 늘 자기가 원하던 대로 팀을 정하던 아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좀 이상한데... 좀 이해가 안 되는데..." 하길래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좀 이해력이 빠른 형아는 공평하다는 눈치다. 그렇게 3명 대 3명 팀을 정해 피구를 했다.
한 친구가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하더니 "십구팔칠"을 외치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나도 나도" 하면서 몰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숫자 세기가 몇 배속 정도로 빨라지더니 하고 싶어 하던 아이를 보며 늦었으니 넌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줌마 이런 거에 굉장히 예민하다!' 심지어는 같이 놀기 싫은 친구가 손가락을 잡으려고 하면 요리조리 피하며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거면 여기여기 붙어라고 할 게 뭔가. 아이들 놀이이지만 그런 순간을 보면 속에서 엄청 화가 난다. 가만히 보던 나는 결국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이런 장면을 여러 번 지켜보았는데 이번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친구야. 여기 붙어라 하는 건 다 같이 하겠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 숫자 세기를 빨리해서 하고 싶은 친구 못하게 하면 안 되겠지? " 아이들 얼굴은 굳어지고 분위기가 싸해졌다. (음... 아줌마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으나...) 잠시 말이 없던 아이들은 "그래 다 같이 하자 우리" 하더니 이내 신나게 술래잡기를 했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도 주도권을 쥔 아이들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곤 한다. 술래잡기를 하면서 술래가 자신을 잡으려는 순간 '타임!'을 외치는 아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놀이에 능한 아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순간순간 만들어 술래가 되는 것을 요리조리 피한다. 그래서 놀이에 능하지 않고 힘이 없는 아이들이 계속 술래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 아이들 중 누군가 나서서 "야! 그거 불공평한 거야! 그런 게 어디 있니?!"라고 말하면 좋을 텐데(3, 4학년 아이들이 같이 놀이할 경우는 동생들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줌마가 나서야 하는 순간엔 좀 난감하다.
며칠 전에는 제일 어린 동생을 형들이 다 같이 놀리거나 놀리면서 도망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형들의 놀림에 동생의 표정이 일그러져도 형들은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웃는 모습에 화가 났다. "왜 동생을 괴롭혀!" 큰 목소리로 아이들을 멈추게 했다. 옆에 있던 아줌마들도 놀랐을 만큼. 감정을 빼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나도 미숙한 어른인가 보다. 친구가 놀린다고 동참한 우리 아이에게도 집에 와서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여러 명이 한 사람을 놀리는 건 좋지 않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그건 장난치는 게 아니고 괴롭히는 거라고 했지?" 다음 날, 친구가 "우리 OO이 같이 놀리고 도망가자. 재미있겠지?"라는 말에 "싫어~ 난 안 할 거야"라고 아이가 말하는 걸 보았다. 이렇게 무엇이 옳은지 기억했다가 지키기도 하지만 또 잊어버리는 게 아이들이다. 그럴 땐 또 이야기를 해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좀 크면 놀이터에 어른은 거의 없고, 혼자 놀이터를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앞으로 노는데 자꾸 끼어드는 아줌마로 소문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알려줘야겠다. 특정 친구를 소외시키지 않게, "장난인데요"라는 말로 다른 친구의 속상함을 무마시킬 수 없음을, 다 같이 공평하고 만족할 때 놀이는 정말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