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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타 Sep 23. 2024

텍사스 일기

240922

텍사스 일기 240922




지금 시간은 9월 22일 오후 21일 15시이다. 오늘은 유독 지루한 날을 보냈다. 텍사스에 방문한 지 이로써 2주일이 되어간다. 총 39일의 여행 중 14일이 흘렀다. 약 1/3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2주간 멈춰온 일기를 작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건 공개되는 일기니까, 솔직함과 대중성 두 가지를 잡아야 하지만 아마 두 가지 모두에서 실패할 것이다.


요즘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 2주간 마신 술이 상당히 많았다. 어제는 옥토버페스트에 다녀왔고, 오는 길에 마트 화장실에서 속을 모두 게워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오늘도 샷을 2개나 넣은 하이볼을 만들어서 마시고 있다. 나는 이게 필요해, 그렇게 말하면서.


한국과 전혀 다른 시간대를 보내면서 지독하게도 외로워졌다. 여기서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항상 14시간이 빠른 한국의 밤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연락들을 기다린다. 2주간 여기에 머물기는 했어도 어째 안주하기가 어렵다.


가족여행이고, 외국에 있는 친척의 집에 머물고 있지만, 의외로 외로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매일 새벽에 눈을 뜨고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점심에는 가볍게 조깅을 한다(오늘은 그마저도 빼먹고 말았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를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전부 읽어버려서 친척이 갖고 있는 책을 읽고 있다. 저녁에는 술을 마시고, 일찍 약을 먹고 잠에 든다. 내가 눈을 뜨는 시간인 새벽 6시는 한국의 저녁 8시니까. 누군가 연락을 해줬을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30살이 된 지 이제 딱 3달 정도가 흘렀다. 20대 내내 연애에 미쳐있었고, 그나마도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섹스에 미쳐있었다. 아무래도 앞자리가 바뀌다 보니 이전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대체 왜 그렇게 자고 싶어 하냐고 친구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너무 걸레 같이 살았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기억도 난다.


요즘 자기 가치라는 말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실연을 겪고나서부터 내 가치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부족했을까, 내가 그렇게 가치가 없었을까.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다가, 또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가치를 깎아먹는 짓을 했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가꾸지 않았어? 왜 그런 실수를 했어?




텍사스에 와서 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스윙댄스, 골프, 독서, 운동, 식사, 음주, 생각. 생각보다 지루한 일들이고, 얼른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얼마나 텍사스에서의 시간을 낭비했었는지를 생각하며 슬퍼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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