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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타 Sep 08. 2024

지푸라기와 지팡이

책을 읽고 자존감을 지키기

지푸라기와 지팡이

책을 읽고 자존감을 지키기




“엄마는 어떻게 지금까지 자존감을 지킨 거야?”
“책을 읽었어.”


최근 2년간 읽었던 약 550권의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위의 문장이었다. 어떻게 자존감을 지켰냐는 딸의 물음과 책을 읽으며 지켰다는 엄마의 대답.


근래 들어 우울감이 가시질 않아 계속 책을 붙잡고 있다. 지난 2년간 훈련소, 공익 근무, 무직 생활을 해오며 우울할 일이 참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시간의 공백 동안 책을 놓지 않았다. 말로 해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게 날 살릴 거야.”


고전 소설, 현대 소설, 사회과학, 과학, 심리학, 자기 계발서, 에세이 등등 가리지 않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얇은 책이거나 속도가 나는 책은 하루에 서너 권씩 읽기도 했다. 책 욕심도 늘어서 집에 책을 한 무더기로 쌓아두며 생활하고 있다. 알라딘에 1,000만 원 가까이 돈을 쓴 기록을 보고 기함하기도, 뿌듯하기도 했다.


독서 기록을 쓰긴 하는데, 공책이나 엑셀에 날짜와 제목 정도만 적는다. 그래서 읽은 것에 비해 기억이 많이 남지는 않는다. 다만 느낌만 남아 있다. “아, A작가의 글은 좋은 느낌이었어!”라거나 “B작가의 글은 좀 알쏭달쏭했어.”같은 느낌이 남는 것이다. 덕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깃거리가 많아진 것은 장점이다.


입을 닫고 책을 읽는 행위는 나에게 명상과도 같이 느껴진다. 책이 무척이나 흥미롭지 않은 이상 독서 자체에 깊이 빠지진 않는다. 보통 다른 생각을 하며 읽다가 앞부분을 까먹어서 다시 읽기 일쑤다. 다만 커트 보니것이 얘기한 것처럼 “책은 무척이나 좋은 물건이다. 종이로 된 페이지를 하나씩 넘기는 느낌도 좋고 말이다.” 그 물성이 좋아서 나는 아직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훨씬 좋다.




우울감이 가시질 않는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질 않는다. 다만 책이 나를 살릴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책을 붙잡는다. 때로 이것은 내게 살기 위해 부여잡는 지푸라기가 되고, 걷기 위해 의지하는 지팡이가 된다. 뭐가 됐든, 책을 계속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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