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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Day Off

: 휴일동안 하는 일은 집에 있기입니다

by 낙타

이 글은 사장인 T에게 ‘밴쿠버 여행 좀 하라'는 숙제를 받고 노스밴쿠버를 여행하기 전에 쓴 글이다.


한 번은 휴일에 나갔다가 울면서 돌아왔다. 영어 쓰는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 휴일에는 집에만 있는다. 집에서 위스키 마시고 책이나 읽고 애인이랑 전화만 한다. 내가 이렇게 집돌이 체질인 줄 나도 몰랐다.


분명 예전 휴일에는 밴쿠버에 있는 카페들도 직접 찾아가고, 메인 스트리트 가게들도 하루 종일 돌았는데, 요즘 휴일에는 영 나가기가 꺼려진다. 저번에 한 번은 재즈 공연을 예약해 놓고 결국 당일날 가지 않았던 적도 있으니까.


이젠 나가더라도 집 앞에 있는 마트 정도만 나가려나. 휴일에 집에만 있으니 한국에선 시켜 먹지도 않던 배달음식에 맛이 들렸다. 휴일이 되면 1+1 하는 피자집에서 찐득한 치즈 피자를 두 판 시키고 위스키 뚜껑을 따는 게 일상이다.


날씨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작년 11월에 도착했을 때야 캐나다도 겨울이 다가오니까 날씨도 꾸리꾸리하고 흐렸지만, 3월이 된 지금은 날씨도 쾌청하고 온도도 딱 나가 놀기 좋다. 밴쿠버는 여름이 예쁘다는데, 그런 예쁜 여름을 위해 움트고 있는 봄의 풍경이 창밖으로도 훤히 보인다. 그런데 정작 나가려는 마음은 안 든단 말이지. 마음이 안 든다기보다는 아예 나가기가 싫다는 마음이 드니, 원.


이걸 들은 사장 J는 그런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는지 밴쿠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이메일로 적어서 보내주었다. 거기에 덧붙여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말도 함께. 리스트에는 내가 조금만 발품을 들이면 갈 수 있는 밴쿠버의 멋진 장소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각종 해변과 근처의 멋진 식당, 좋은 공연을 하는 공연장, 괜찮은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거리 등등. J는 자신도 혼자 외로웠지만 열심히 다녔노라고,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J, 여전히 저의 취미는 집에 있기, 책 읽기, 위스키 마시기입니다. 조금 더 봄날씨가 활짝 피어난다면 저의 마음도 피어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혼자서 때 늦은 겨울을 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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