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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ul 28. 2023

중고 시계 쫌생이와 가성비

구글에 'cool watch picture'로 검색. 사진 속 시계는 로리에(lorier)의 넵튠(neptune) 버전 1로 보인다(dapperconfidential)


중고 시계 쫌생이와 가성비




가성비는 중요하다. 특히 물건의 가격이 나의 생활 수준을 넘을 정도라면 내가 지불한 가격만큼의 성능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일은 합당해 보인다. 비싼 돈을 들여서 구매하였으니 그에 맞는 성능을 거두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이거 사려고 지금 얼마를 들였는데! 한 푼 두 푼 들인 게 아니므로 시계태엽에 신박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거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려한 디자인이거나, 내구성이나 방수성능이 뛰어나야 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다 좋으니 브랜드라도 사람들이 눈치채주는 시계여야 한다.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면 적어도 남들이 알아봐 줄 만은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시계에서 얻으려는 성능이고 내가 지불한 가격의 이유니까.


이렇게 가격과 성능만을 두고 비교한다면 왜인지 새 시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중고 시계만 구입하게 된다. 남들 손이 조금 탔을지언정 내 경제 수준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제품을 지불가능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문 몇 개 묻어있고 생활 기스 조금 난 것 정도야 어차피 새 시계를 사도 일주일이면 생기는 것들이다. 물론 정식 소매업자로부터 구매한 것은 아니므로 보증이 안 되는 문제는 있지만, 애초에 보증이란 무엇인가? 일정 기간 동안 이 제품이 문제없이 작동할 거라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보증은 내부요인을 무상 수리해 주지 소비자과실 등의 외부요인은 언제나 유상 수리이다. 보증서가 없어서 추가 요금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거야 뭐 수리해 준다는데 내면 되겠지. 공식 수리가 아니어도 뭐 어떤가. 국내에는 아직 쌈박하게 시계를 고쳐주시는 전문가분들이 전국에 계시지 않은가? 심지어 시계 작동에서도 크게 걱정이 없는 게, 이미 이전 소유자가 한 번 써보고 판매하는 거니까 시계가 잘 굴러간다는 것도 보장된 셈이다. 이렇듯 보증서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새 시계를 사는 일이 낭비처럼 생각된다. 굳이 큰돈을 주고 새 시계를 사야 할까? 100만 원대 새 시계가 중고가격이 60만 원이라면, 내게 그 시계의 가치는 어느덧 60만으로 고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100만 원을 다 쓰는 일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40만 원이면 괜찮은 중고 시계를 하나 더 들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적잖은 돈이 아닌가? 40만 원으로 백화점에서 대접받는 기분을 내고 보증서 하나를 얻을 수 있다지만, 차라리 못된 판매자에게서 보증서 없이 시계를 사더라도 40만 원이 굳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다. 내게 몇십만 원은, 적잖은 돈이다. 그런데도 60만 원은 저렴하다고 느낀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소매가 100만 원대 시계가 중고 시장에 60만 원에 올라오면 이걸 저렴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판매자의 모종의 이유로 그 제품이 50만 원에 올라온다면 '땡잡았다'며 정말 정말 저렴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가진 게 50만 원인지 5만 원인지 상관이 없다. 지금 내 눈앞의 시계를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금전감각이 마비되어서 비싼 돈인데도 불구하고 '새 제품에 비해 싸다'며 구입한다. 이건 가성비가 끝내준다며. 내일부터는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 돈에도 벌벌 떨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기뻐한다.


그다지 올바른 삶의 방식이 아닌 느낌이 든다. 중독, 충동구매, 과소비, 자기 합리화, 자기 성찰의 부재, 금전감각의 상실, 자존감의 결핍 등이 섞인 부정적인 방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머리로 아는 걸 넘어서 마음으로 느껴진다: 작작 좀 해.


온라인으로 중고 시계를 사는 경험은 손쉽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건 딱히 중고 제품인지 새 제품인지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중고시계 매장 같은 제삼자를 끼지 않고 가장 저렴하게 중고 시계를 구매하려면 어디까지나 온라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쉬우면서 동시에 자신이 평소에 살 수 없었던 물건을 눈여겨보게 하므로, 이는 또한 허영심을 만들어낸다. 손쉽게 자신의 허영심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어느 정도 이 행위에 중독되어 있다.


새 시계를 살 때의 그 느낌, 사실은 나도 느껴보고 싶다. 시계를 차러 백화점에 가봤는데 소매업자분이 너무 잘해주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내 경제적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적 수준에 비해 허영심이 하늘을 찔러서 부족한 자존감은 뒤로 하고 물건만 사 모은다는 것이다. 마치 그게 무언가를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아니다. 어딜 가나 시계가 있는 마당에 그 쪼끄만 거 하나 사서 뭐 하겠는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기존의 시계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누차 말하지만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쓸 것들이지 않은가. 이런 말을 비슷하게라도 우리는 참 많이 듣는다: 현재에 감사하라. 코웃음 치기에 이 진부한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스테디셀러는 언제나 베스트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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