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Walter Hartwell White)'와 그의 '계산기 시계(CA-53W-1Z)'(teddybaldassarre)
저것 봐! 나 저 시계 있다?!
최근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Indiana Jones and the Dial of Destiny, 2023)이 개봉했고, 곧 오는 8월 15일에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두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시계 회사 해밀턴(Hamilton)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마음으로다가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시계를 다루는 매체나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이번에 존스가 차고 나올 시계인 '볼튼(Boulton)'이 1960년대 말의 미국 분위기를 얼마나 잘 담아낸 시계인지,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이 차고 나올 빈티지 해밀턴 시계들이 얼마나 멋지고 고증이 잘되어있는지가 눈에 밟힌다. 시계를 좋아하는 나는 존스 시리즈를 하나도 안 봤는데도 영화에 나온다니까 괜히 볼튼이 멋져 보이고, 영화도 봐야 하나 싶고 그렇다. 하물며 존스 시리즈의 팬이면서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해밀턴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Edward Nolan)과 언제나 이런 협업을 잘해왔지만 수많은 다른 영화에서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맹활약 중이다.
그냥 멋진 시계가 아니라 주제 의식이 있는 특별하고 멋진 시계를 찬다는 것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디어를 보다가 미디어 속 인물이 찬 시계가 갖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미디어 속 인물과 내가 가진 시계의 접점이 생길 때 괜히 기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예시가 있겠지만 시계 브랜드 카시오(Casio)의 데이터뱅크 CA-53W-1Z, 일명 '계산기' 시계는 유명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유튜브 채널 <생활인의 시계>에 올라온 영상을 참고하자면('2만원대 무비 스타 카시오 CA-53W 리뷰 + 전자계산기 시계의 역사'), 이 시계는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 1985)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2008), 그리고 가장 최근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2016)에서까지 대활약 중이다. 디지털과 사이버네틱스가 섞인 20세기말의 분위기를 잘 담은 역작인 탓에, 이 시계는 요즘 소비자가 지닌 레트로한 취향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음, 카시오는 언제나 이런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녀온 것 같다. F-91W-1은 파란색 테두리를 지닌 평범한 전자시계지만, 압도적인 내구성과 말도 안 되는 방수성능 그리고 저렴한 가격 때문에 시계 커뮤니티 내부에서 팬층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미디어에도 많이 노출되어 왔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당시 이 시계를 차고 있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기도 했고, 또한 동시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이 시계를 찬 모습도 공개됐었다. 이외에도 검은색 다이얼 가운데에 그려진 청새치 그림이 유명한 카시오의 MDV-106-1A, 일명 '흑새치'도 뛰어난 가성비와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차고 나온 사진이 유명해져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해밀턴과 카시오뿐만이 아니다. 최근 내가 푹 빠져있던 영화 존 윅(John Wick) 시리즈에서는 스위스의 시계 회사 칼 F.부커러(CARL F. BUCHERER)가 처음부터 끝까지 윅의 손목 위에서 등장했다.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가 주연을 맡아 수많은 2차 창작을 만들어내고, 벌써 18년 넘게 '대체 2편은 언제 나오냐'는 소리를 듣고 있는 영화 <콘스탄틴>(Constantine, 2005)에서는 오리스(ORIS)의 시계가 화면 가득 잡혔다. '오리스 모던 클래식 7490'이라는 이름의 이 시계는 여전히 중고 시장에서 '콘스탄틴 시계'로 유명하다.
마블(MARVEL) 스튜디오의 닥터 스트레인지(Dr.Strange) 시리즈에 등장하는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 이 또한 속편을 기다리게 되는 넷플릭스 <6언더그라운드>(6 Underground, 2019)의 쇼파드(Chopard).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비롯해 수많은 명사들이 찼던 까르티에(Cartier)의 탱크(Tank)는 아예 그걸로 대형 양장본 책 한 권이 나왔다(Franco Cologni, The Cartier Tank Watch, Flammarion-Pere Castor, 2017).
앞서 말한 것처럼 주제의식이 담긴 특별하고 멋진 시계를 차는 일은 정말 끝내주기에, 사람들은 PPL임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나 또한 <브레이킹 배드>를 보다가 드라마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며 카시오의 계산기 시계를 구입해서 지금까지 갖고 있다.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았어도, 단순히 어떤 이에게 헌정했다는 의미만으로도 구매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정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어머니께 세이코(Seiko)의 로렐 알피니스트 SPB241을 드렸을 때 어머니는 시계를 요리조리 검색해 보시면서 "진짜 내 시계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게 된다"며 기뻐하셨다. 내 시계가 단순히 시계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과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다는 점, 그 특별함과 소속감이 끝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