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텍 필립(Patek Philippe)의 유명한 광고. "당신은 파텍 필립을 가질 수 없다." (mobiinside)
《시계 더 사지 않기 선언문》
요즘 날이 더워서 그런가, 왜인지 자꾸 알리 익스프레스를 들락날락거리게 되고 온라인 중고 시장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왜인지 평소엔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괜찮고 신기한 시계가 보이기도 하고, 중고 시장에서도 평소엔 보기 힘들었던 시계가 차암 괜찮은 가격에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내가 더위를 먹고 헤롱거리지 않는 이상, 날씨와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잘 먹지 않았는데, 유독 입이 '터져서' 눈에 띄는 족족 먹어치우게 되는 어떤 시기처럼, 요즘 시계에 대한 욕망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되어 결국 이런 선언문까지 쓴다.
본 《시계 더 사지 않기 선언문》은 시계를 또 사려는 헛된 욕망과 괜히 저 시계가 더 좋아 보인다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고, 내 시계함 속 시계들과 통장 속 현금의 안녕을 위하며, 참되고 올바른 시계인으로서의 덕목을 함양하고자 작성되었다.
하나, 세상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시계 안 사려고 삼라만상 진리를 끌어다 쓰는 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한 말만큼 사실인 것도 없다. 강산이 변하는데 10년이면 충분하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20년이면 충분했다. 내가 샀던 시계, 내가 사는 시계, 내가 살 시계도 모두 고작 몇 년 뒤, 몇십 년 뒤에는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시계가 영원할 거라는 생각은 그릇되었으며, 이를 바라는 마음은 헛되었다. 따라서 불변하는 형상에 대한 어리석은 소망을 버리고, 세상 만물은 변화의 가운데에 있다는 부처의 말씀을 떠올리며, 엔트로피(entropy)는 항상 증가하여 무질서(無秩序)를 증가시킨다는 것이 우리 3차원의 열역학 법칙임을 명심하자.
여기에 이어서 둘, 시계는 소모품이다. 아니, 소모품이면 이래저래 예비 부품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또 불안해지지만, 그 부품을 사도 어차피 망가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그냥 최소한의 소중함만을 보여주며 맘 편히 쓰는 것이 낫다. 나는 내 시계를 영구히 소장할 수 없다. 초고가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당신은 파텍 필립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음 세대를 위해 맡아두고 있는 것뿐입니다(You never actually own a Patek Philippe. You merely look after it for the next generation)."라고 말했지만, 난 물려줄 애들도 없을 것 같고, 하물며 혹시 모를 애들도 내 시계는 받지 않을 것 같으며, 애초에 내 시계들은 그쯤 되면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고 삭아 없어졌을 것이다.
이렇듯 셋, 나는 모든 일에 대비할 수 없다. 시계는 소모품이니까 예비 부품을 쟁여두겠다고? 베젤이 깨질 것 같아서 베젤을 쟁여두면 스크루다운 크라운이 박살 나고, 크라운을 쟁여두면 이번엔 시계 유리가 작살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부품값으로 시계 하나를 더 사겠지 싶지만, 그러면 결국 쓸모없는 시계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크로브랜드라 할지라도 시계 회사에서는 언제나 여분의 부품을 갖고 있으며 웬만하면 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초에 시계 회사가 사라지기보다 먼저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질 확률이 크다. 수십, 수백, 수천 명이 달라붙어 운영되는 브랜드라는 가상의 법인보다는 고작 비루한 육체를 하루하루 견인할 뿐인 인간이 언제나 죽음과 소멸에 가깝지 않겠는가. 심지어 쿼츠 위기(Quartz Crisis)를 겪고 죽은 브랜드가 현대에 다시 부활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넷, 시계는 한 푼 두 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시계보다 중요한 것은 차고 넘친다. 언제까지 시계에만 매몰되어 있을 것인가? 이제 더 이상은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야 하는 나의 장래 계획을 뒤로 미뤄놓을 수 없다. 굳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게는 사야 할 책이 있고,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해외 여행지가 있으며, 하물며 박사과정 가고 싶다는 소망에도 돈이 든다. 그러니 시계의 우선순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다섯, 생활수준에 맞는 시계를 차야 한다. 그리고 이미 생활수준에 넘는 시계가 한 상자 가득이다. 대체 하루하루가 불안한 소시민인 나에게 명품시계가 왜 필요한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지만 그게 왜 두 개, 세 개여야 하는가? 난 이미 명품 시계를 두어 개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중고 시장에 올라오는 또 다른 시계에 눈독을 들인다. 명품 혹은 사치품을 나타내는 단어 럭셔리(Luxury)는 '정도의 지나침'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Luxus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초과'와 '잉여'는 어디까지나 현재 상태의 충분한 만족과 안정감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모래 위의 누각처럼 위험하며 속 빈 강정처럼 실속이 없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명품을 욕망하기보다, 명품을 욕망하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성찰하여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 여섯, 어찌 됐든 시계를 찰 수 있는 손목은 하나다. 현대 사회는 아직 양손목에 시계를 차는 기행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가뜩이나 차별금지법도 제정될 기미가 안 보이고, 생활동반자 법도 희미한 관심만을 받는데'양손목에 시계 차기'는 아직 그렇게 급박하지도 않다. 소수자 문제에 우선순위는 없다지만, 이건 소수자 문제가 아니다. 즉, 적어도 몇십 년 간은 오로지 한 손목에 단 하나의 시계만을 차게 될 텐데, 대체 왜 시계가 두 자릿수가 넘어야 하냐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더 많은 시계를 차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연이 보기에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 것은 실속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겸허히 내 손목이 하나뿐임을 깨닫고, 지금 가진 시계들에서 줄일지언정 더 늘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될 것이다.
이 글은 참된 시계인으로서 나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고, 과오를 성찰하며, 동료 시계인들과 나 자신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모두의 올바른 시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길 바라며, 그대에게 장수와 번영과 포스가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