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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Aug 01. 2023

시계줄은 시계의 옷이랄까?

이번에 찾은 또 다른 '색다른' 시계줄(Aliexpress)


계줄은 시계의 옷이랄까?




시계줄이 시계의 옷이라니. 지금까지 들은 온갖 칭찬 중에서 옷 잘 입는다는 말만큼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내가 이 말을 한다는 건 선 넘는 것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티셔츠와 같은 바지를 교복처럼 입는 나지만, 시계줄 만큼은 그에 비할 바 없이 신경 쓴다. 이 검은색 다이얼에 베이지색 가죽 시계줄이 어울릴까, 아니면 검은색 고무 시계줄이 어울릴까? 시계 업계에서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요즘은 별다른 도구 없이도 시계줄의 탈부착을 쉽게 하는 장치를 시계줄에 달아준다. 이 덕분에 누구나 빠르게 마음에 드는 시계줄을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시계줄을 바꾸는 주기도 빨라져서, 10분에 한 번씩 시계줄을 고르는 일도 왕왕 생겼더랬다.


이렇듯 시계를 만지작 거리는 일만큼이나 내가 자주 하는 일이 바로 시계줄을 만지작 거리는 일이다. 괜히 시계줄을 풀어보고 시계줄을 다시 차보고, 시계줄을 조금 조이게 찼다가 다시 느슨하게 차고, 괜히 손 좀 씻다가 시계줄의 방수성능이 궁금하다며 시계줄에 물을 묻혀보고, 축축해졌다며 후회하고, 그러고는 알리 익스프레스에 들어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신박한 시계줄이 없나 살펴보고, 또 사고, 다시 시계줄을 만지작거리며 불만족스러워한다.


이렇게 산 시계줄이 벌써 10리터 기준으로 2 봉지다. 이 과오의 봉지 안에는 처음 사보고 그 당시에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둔 똑같은 모양의 시계줄, 시계를 사니까 주었던 여분의 서비스 시계줄, 좀 색다른 걸 시도해 보려고 샀던 특이한 시계줄, 그리고 일반적인 모양부터 희한한 모양까지 구비된 수많은 시계줄 부품들이 들어있다. 시계줄은 시계보다 훨씬 빨리 소모되는 편이지만, 내 평생 쓰더라도 이 시계줄 대부분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관짝에 들어간다면 내 오른쪽에는 시계들이, 내 왼쪽에는 시계줄이 놓이겠지. 덕분에 저승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다 싶다, 가는 길에 10분마다 멈춰 서서 시계를 바꿔 차던가 시계줄을 바꾸던가 할 테니까.


왜 이렇게 쓰지도 않을 시계줄이 많아졌담? 이미 시계줄뿐만 아니라 시계도 많은 상황에서 이게 유효한 질문인가 싶지만, 어쨌든 내게 시계줄이 많은 이유는 아마 옷보다 신경 쓸 게 적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옷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상의와 하의가 있고, 거기에 아우터도 걸치고, 양말도 신고, 신발도 신어야 된다. 그러나 시계줄은 그냥 시계줄 하나니까 훨씬 부담이 적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시계줄만 해도 시계줄과 시계줄을 잡아줄 버클, 시계줄의 스트랩을 고정시켜 줄 홀더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더해서 시계줄의 소재가 소, 악어, 뱀, 타조, 도마뱀을 사용한 동물성 가죽인지 비건 가죽인지, 혹은 고무, 캔버스, 메탈 브레이슬릿인지 등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버클도 일반 버클인지 아니면 버터플라이 버클인지 폴드오버 클래스프가 장착된 디버클인지에 따라 다르다. 홀더는 남는 시계줄을 잘 잡아주는가? 디버클과 버클 중 어떤 것이 착용감이 더 좋은가? 지금 계절에는 어떤 소재의 시계줄이 제일 어울리는가?


그래서 그런지 시계만큼이나 시계줄에 대한 강박도 큰 것 같다. 오늘 차고 나온 시계만큼이나 오늘 차고 나온 시계의 시계줄을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아, 어제 차고 나왔던 검은색 고무 시계줄이 역시 더 좋았으려나? 하지만 오늘 차고 나온 베이지색 가죽 시계줄이 착용감은 더 편한데. 아니야, 역시 빈티지한 느낌의 메탈 시계줄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 아닌가? 역시 좀 색다른 시계줄을 하나 더 사야 하나?


인지행동치료라는 걸 들어봤는데 아직 받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이런 나의 웃지 못할 행동들이 나를 적잖이 피곤하게 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나의 강박증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뭐가 어쨌든 간에 꽤 괜찮은 설명이다. 내 지난 삶 속에서 만들어진 강박증을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시계줄 한 두 개로 마음이 편해지면 싸게 먹히는 거지.




시계인들이여,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지? 당신들의 시계함에도 나만큼이나 많은 시계가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시계줄을 갖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계를 열광하고 새로운 시계줄을 욕망하는지? 이러한 시계인의 생활은 분명 탐욕스러운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싸지만 않다면야, 싸게 먹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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