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달동네의 풍경과 주민들

by 야매해리

민수가 골목을 나가는 아침이 되면, 좁은 길목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저 낡은 동네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골목골목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가득 찰 때면 활기로 넘쳐났다.

진우는 부엌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며 숨을 고르듯 작은 한숨을 쉬었다.

좁다란 골목은 마치 미로처럼 꼬여 있었고, 비탈진 계단과 흙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이 내다 버린 가구나 녹슨 고철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민수야, 뛰지 마라니까!”

아랫집 아주머니가 빨랫줄에 젖은 옷을 걸치며 소리쳤다. 해가 맑은 날이면 늘 마주하는 모습이었다. 민수는 대답 대신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비탈길로 내려갔다. 아주머니는 민수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민수는 늘 밝고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 밝음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어른처럼 괜찮은 척하는 것인지 아주머니는 알 수 없었다.

골목은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칠 공간일지 몰라도, 민수에게는 이곳이 집이자 세계였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에서 자랐고, 이곳의 구석구석이 그의 기억과 얽혀 있었다. 벽돌 틈새마다 자란 잡초, 오래된 나무 전봇대의 갈라진 껍질, 그리고 빗물이 흐르며 남긴 흔적들까지 모든 것이 익숙했다.

이 동네의 사람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민수는 아래쪽에서 폐지를 모으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무 수레를 밀며 천천히 골목을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몇 년째 이곳을 돌며 폐지와 고철을 모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지만, 민수는 그가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음을 느꼈다.


“어... 진우야, 형이랑 잘 지내냐?”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창 안으로 보이는 진우를 보며 말했다. 진우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오늘도 수레 끌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허허, 어린 게 할아비 힘들 걱정을 왜 해? 괜찮아.”

진우는 조금 더 올라온 할아버지의 수레를 잡아 미는 흉내를 했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길을 올라가는 것을 본 진우는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 외투를 집어 들고 골목길로 나섰다.


골목 한편에서는 빨랫줄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랫집 물 새는 집 있잖아. 그거 언제 고쳤대요?”

“고쳤긴 뭘 고쳐요. 비만 조금 더 오면 또 새겠죠. 저 집은 벽 자체가 문제라니까요.”

“아휴, 그 집도 문제가 많네. 이 동네 집은 하나같이 오래돼서…”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아'

민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동네 사람들은 전부 비슷한 사정이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낡은 집에 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뉴스에서는 재정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정치인들의 단골 멘트를 자주 방송하였다. 실제로 집들은 아주 천천히 비어져가고 있었다.

민수는 비탈길을 내려가다 보면 보이는 골목 끝에 가동을 멈춘 공사장의 녹슨 철문이 보였다. 몇 년 전 예산 부족으로 문을 닫은 이후, 철거 예정이라는 소문만 돌뿐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진 않았다. 그 사이 공사장은 아무도 손대지 않는 위험 지역으로 변해있었다.

민수는 골목길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할 텐데... 갈 곳은 있을까?”

떠난다는 생각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자신이 진우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골목 계단 아래쪽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진우가 항상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앞장서서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던진 낡은 공이 비탈길 아래로 굴러가자, 진우가 버선발로 뛰어 내려갔다.

“야, 조심해! 넘어지면 다친다!”

“괜찮아, 괜찮아!”

동생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민수는 걸어가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게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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