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불길한 하루의 시작
계단을 재빨리 내려가며 진우가 자주 가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민수는 이른 아침에 어김없이 눈을 떴다. 머리맡의 작은 창문 틈새로 쏟아지는 햇빛이 방 안을 투박하지만 부드럽게 물들였다. 습관처럼 눈을 비비며 천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방 안은 조용한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민수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고,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불을 깔아 둔 방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불은 바닥에 푹 꺼져있었다.
“진우야?”
민수는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방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이불 틈새에서 작은 손을 흔들거나, ‘더 자고 싶어’ 투덜대는 진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민수는 이내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진우의 가방은 그대로였고, 신발장엔 작은 운동화 한 켤레가 비어 있었다. 민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장실 갔나…? 어디 갔지?”
민수는 작은 방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문득 부엌 쪽에서 냄비나 그릇을 건드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부엌은 조용했고, 여전히 어젯밤 사용한 그릇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진우야!”
민수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불렀다. 혹시나 집 밖에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민수가 문을 열고 집을 나가자 좁은 달동네 골목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낡은 시멘트 계단, 꺾어진 전깃줄, 빨랫줄에 널린 속옷과 수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옆집 아주머니가 계단 위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빗자루가 땅에 쓸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아침 공기를 깼다.
“아줌마, 혹시 진우 못 보셨어요?”
민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빗자루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진우? 아침부터 못 봤는데. 집에 없니?”
“글쎄요... 일어나서 보니까 집에 없어서요."
민수는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혹시 보시면 꼭 알려주세요.”
“그래, 내가 잘 보고 있을게.”
민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그는 동생이 자주 가는 장소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네 문방구였다. 진우가 용돈 몇백 원을 모아 자주 과자를 사러 가던 곳이었다.
민수는 서둘러 문방구로 향했다.
문방구는 여전히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조용했다. 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주인이 민수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진우 왔다 갔나요?!”
문방구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안 왔는데? 아직 애들이 올 시간도 아니잖아. 왜?”
민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간곡히 부탁했다.
“혹시 오면 저한테 바로 말씀 좀 해주세요. 연락도 없이 나가서요.”
“어어, 그래. 공터에 애들 모여있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도 가봐.”
“네 감사합니다”
문방구를 나온 민수는 공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터는 모래 먼지가 일고 잡초가 무성한 그곳은 아이들의 유일한 운동장이자 놀이터였다. 그곳에는 간이 골대가 있었고, 진우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곤 했다.
도착한 공터는 텅 비어 있었다. 민수는 공터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혹시라도 진우가 남긴 흔적이라도 있을까 눈으로 샅샅이 살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와 모래 먼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민수는 고개를 떨군 상태로 공터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쌌다. 진우가 이렇게 말도 없이 아침부터 사라진 적은 없었다. 평소 밝게 형에게 달려오던 동생의 모습이 떠오르며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민수는 마지막으로 공사장을 떠올렸다. 공사장은 진우가 가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장소였지만, 어쩌면 호기심에 그곳으로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공사장 입구에 도착한 그는 거대한 녹슨 철문 앞에 섰다.
녹슨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철문 너머로 철근과 장비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진우야!”
민수는 동생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문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처럼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뿐이었다. 민수는 철문 앞에 멈춰 생각에 잠겼다.
골목길로 돌아오며 민수는 다시 한번 모든 가능성을 떠올렸다. 진우는 친구들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다른 동네로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하나 떠올릴수록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수는 자신이 살아온 이 동네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나 진우가 팔을 벌리며 달려왔던 좁은 골목, 문방구 앞에 앉아 과자를 나눠 먹던 계단, 비탈길 끝에서 민수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 작은 손. 그 모든 기억이 갑자기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했다.
민수는 골목 어귀에 서서 숨을 골랐다.
“진우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다시 한번 동생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침묵만이 골목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