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흔적을 좇아서

3-1: 단서

by 야매해리

민수는 찬 벽에 등을 기댄 채 꼼짝도 하지 못한 채로 밤을 버텼다. 동생을 챙길 땐 어른 같아 보였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눈두덩이까지 부어오른 얼굴은, 그가 지난밤을 얼마나 괴로움 속에서 버텨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자 민수는 눈을 떴다. 이내 눈을 비비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재빨리 골목길로 나섰다. 어둠이 걷혀가는 동네는 새벽이슬로 서늘했다. 평소였으면 시원하게 느껴졌을 공기가 낯설기만 했다.


민수는 골목을 걷다가 멈춰 섰다. 그의 머릿속은 지난 시간 진우가 갔을 만한 장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진우야… 어디 있는 거야…”

민수는 동생의 이름을 작게 불러 보았다. 그는 공터에서 발견한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 꽉 쥔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도 진우와 자주하던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민수는 진우가 숨었을 법한 장소를 다 놓치고 엉뚱한 골목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 진우가 골목 어귀에서 웃으며 뛰어나오며 외쳤다.

“형, 힌트 엄청 남겨놨는데 왜 못 찾아~? 저기도 그려놨고 여기도 찾으라고 던져뒀는데”

주마등처럼 스친 기억은 지금의 민수에게 낡은 지도를 건네는 듯 했다.

진우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남기는 아이였다.

작은 그림, 과자 봉지, 나뭇가지 하나 등 진우만의 방식으로 ‘여기 있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혹시… 이번에도?

민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자리를 옮겼다.


민수는 어제 들렀던 문방구를 떠올렸다. 진우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민수는 서둘러 골목을 따라 문방구로 향했다. 가게 앞에 도착하자 작은 전구가 희미하게 깜빡이며 방금 영업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특유의 오래된 과자 냄새와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민수를 반겼다. 카운터 근처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주인이 허리를 펴며 눈을 마주쳤다. 문방구 사장님은 민수를 보고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 왔구나.”

“혹시… 어제나 오늘 진우를 보신 적 있나요?”

민수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떨렸으며, 표정에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장님은 이마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진우? 글쎄다… 어제오늘은 못 본 거 같은데… 어, 그래 그래 맞다!”

그는 손뼉을 탁 쳤다.

“어제 오후에 가게 앞에 봉투 하나가 있더라고. 내가 혹시나해서 주워놨는데… 혹시 이거 진우꺼니?”

민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봉투요? 무슨 봉투요? 어디에 있어요?”

주인은 카운터 아래에서 꼬깃꼬깃 주름 잡힌 봉투를 꺼냈다. 작은 종이봉투가 의자 아래에 반쯤 숨겨진 채 놓여 있었다. 민수는 재빨리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진우가 자주 쓰던 크레파스 봉투와 똑 닮아 있었다.

봉투를 열자 낡은 크레파스 몇 개와 함께 접힌 그림들이 나왔다.

가장 앞쪽 종이를 펼치자, 형과 동생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그림이 보였다. 그 뒤로는 빨간 선과 파란 선이 길처럼 이어져 있었고, 끝에는 계단 비슷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 귀퉁이에는 삐죽삐죽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이거 진우 거예요… 진우가 그렸어요.”

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꼭 쥐었다.

그림 속의 길이 혹시 진우가 남긴 힌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민수는 인사를 하며 재빨리 문방구를 나왔다.

‘이거… 어디서 봤더라…’

민수는 골목을 뛰어 올라가며 그림을 반복해서 들여다봤다.

계단, 곡선, 나무—그건 집 근처 골목 아래, 진우가 자주 놀던 계단 공간과 닮아 있었다.

이내 민수는 집 근처 골목길 한쪽, 오래된 계단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골목길 계단 아래는 진우가 종종 민수가 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놀이를 즐기던 장소였다.


장소에 도착한 민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땀을 닦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내려가 주위를 살폈다.

계단 아래는 바람에 쌓여 모인 낙엽이 가득했지만, 그 틈 사이로 크레파스로 그린 자국이 보였다.

낙엽을 치우니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 크레파스 자국이 바닥에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크레파스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것으로 보아 그린 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여기…”

낙서처럼 휘갈긴 선들 중, ‘형’이라는 단어와 웃는 얼굴 두 개가 비뚤비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민수는 진우가 남긴 힌트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담벼락 끝에는 희미하게 그려진 화살표 하나가, 윗골목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수는 그림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들었다.

진우는 이 방향으로 갔을까?

그는 숨을 들이쉬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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