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흔적 없는 밤

“그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 형의 그림자만 길게 남았다.”

by 야매해리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사이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민수의 발목을 붙잡는 듯했다. 진우를 찾기로 다시 다짐했지만, 가슴속 허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느꼈던 무력함과 주고받은 말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진우야…”

민수는 동생의 이름을 조심스레 부르며 골목을 느릿하게 걸었다. 하루 종일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밤이 깊어지면 더더욱 찾기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그는 진우가 자주 다니던 동네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훑었다. 공터 옆 버려진 벽돌더미, 잡초가 무성한 계단, 문방구 앞의 낡은 벤치까지—낮에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지만, 밤의 그림자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음산해 보였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민수는 벽에 기대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밤공기는 제법 서늘했지만, 민수의 목덜미와 손바닥은 후끈했다. 혹시 누군가 진우를 데려간 건 아닐까? 아니면 길을 잘못 들어 위험한 곳으로 들어간 건 아닐까?

불길한 상상들이 쉼 없이 고개를 들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때, 민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장소가 있었다.

바로, 공사장이었다.

낮에도 다녀온 곳이었지만, 진우에게는 여러 차례 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곳. 민수 자신도 그 공간의 위험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진우에게는 특히 엄격히 말려왔었다.

“아까 가긴 했는데…”

민수는 다시 공사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혹시 진우가 나타나지 않을까 희망 섞인 눈빛으로 골목 구석구석을 살폈다.

공사장 앞에 도착했을 때, 철문은 낮과 다름없이 굳게 잠겨 있었다.
녹이 슨 철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어둡고 고요했다.
바람에 철근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진우야!”

민수는 철문을 붙잡고 힘껏 흔들며 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퍼져나간 메아리뿐이었다. 그는 철문 옆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넘을 수 있는 틈이 있는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없는지 눈을 부릅떴다.

문 근처에는 쓰러진 기둥이 있었다. 그 옆, 작은 창문 틈이 보였다. 민수는 기둥을 디디고 조심스럽게 그 틈을 통과해 공사장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두 발이 땅에 닿자, 발밑의 작은 자갈이 미끄러지며 삐걱거렸다.
순간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고, 민수는 벽에 손을 짚고 숨을 가다듬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두운 공사장 안은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겨우 스며들 뿐, 대부분은 암흑이었다.

민수는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손 안의 작고 강한 빛이 일부분을 밝혀주었지만, 시야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공사장 내부는 한눈에 봐도 위험천만했다.
비뚤게 쌓인 시멘트 포대들, 곳곳에 흩어진 철근들, 그리고 삐죽삐죽 돌출된 날카로운 구조물들이 발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민수는 손에 핸드폰을 더욱 꽉 쥐고, 바닥과 주변 구조물 사이를 비추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때, 무언가가 플래시 불빛에 반짝였다.
처음엔 유리 조각이라 생각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익숙한 물건의 실루엣이 보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빨간 장난감 자동차.
진우가 늘 손에 쥐고 다니던 바로 그것이었다.

“진우야… 진우야!”

민수는 자동차를 집어 들고 손에 꼭 쥐었다.
동생이 이곳까지 온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언제, 왜, 그리고 어디로 간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민수는 더욱 다급하게 공사장 안을 살폈다.

“진우야! 어디 있니! 대답 좀 해!”

목이 터져라 외쳐봤지만, 차가운 철근과 벽돌 더미만이 그 외침을 되돌려줄 뿐이었다.

밤은 이미 깊어졌고, 민수는 결국 무너진 콘크리트 벽 옆에 주저앉았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내 눈가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소리 없는 울음이었다.

“진우야… 형이 왔잖아… 어딨 어… 왜 대답을 안 해…”

민수는 한없이 작아진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다. 동생이 사라졌는데, 자신은 그저 장난감 하나 쥔 채 울고 있을 뿐이었다.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마치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했다.


공사장을 빠져나온 민수의 발걸음은 돌처럼 무거웠다.

골목은 여전히 빨랫줄이 늘어지고, 창문엔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엔 진우의 웃음소리도, 장난감을 들고 뛰어오던 발자국도 없었다. 너무 익숙했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민수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불을 켜자, 좁은 방은 어젯밤 그대로였다. 책상 위, 진우가 마지막으로 올려두었을 로봇 장난감 하나가 꼿꼿이 서 있었다.

민수는 방 한가운데에 천천히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었다.

“진우야… 돌아와. 형이 기다릴게. 제발…”

그는 장난감 자동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눈을 감았다. 손바닥의 작은 물체가 아직 따뜻하기라도 한 듯, 민수는 가만히 떨리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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