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는 늦은 오후의 빛을 받으며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침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바람만이 흙바닥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민수는 발끝으로 흙을 살짝 밀어내며 천천히 공터 안으로 들어섰다.
철제 그네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낡은 쇠사슬을 끌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둔탁한 소리는 민수의 가슴 안에서 울리는 두려움과 묘한 리듬으로 겹쳐졌다. 민수는 그네 옆을 지나며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아무 흔적도 없다.
“… 진우야.”
목소리는 거의 들릴락 말락 한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터 한가운데 놓인 타이어 더미가 민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진우가 늘 앉던 곳.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가면 항상 그 자리에 앉아 형을 기다리던 자리. 넓은 공터에서 멀리 바라보기에는 그 자리가 제일 명당이었다. 민수는 타이어 더미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그 옆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민수의 호흡이 멎었다.
타이어 더미 위에, 작은 그림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흙먼지에 반쯤 덮여 있었지만 그림 속 두 아이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진우가 예전에 그렸던 그림이 틀림없었다.
민수는 그대로 무릎이 꺾여 바닥에 손을 짚었다. 공터 전체가 그 그림 하나로 꽉 채워지는 듯했다.
눈물이 고이고, 목이 탁 막히고, 숨이 가쁘게 오락가락했다.
“… 진우야…”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타이어 더미 뒤쪽에서
작게, 아주 작게
흙이 부스스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민수는 머리가 번쩍 들릴 정도로 순간 모든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났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더미 뒤편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너무 조용한 그림자 하나가 타이어 더미 뒤에 숨어 있었다. 작은 무릎을 꿇고 앉아 양팔로 다리를 감싸고 머리를 묻은 모습. 딱 봐도 오랫동안 울었던 흔적이 등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수는 한 발,
또 한 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돌멩이가 발끝에 굴러가 짤깍 소리를 냈다. 그 순간, 작은 몸이 움찔했다.
민수는 자세를 낮추어 부드럽게 불렀다.
“진우야…”
그 한마디에, 나무 뒤에서 아주 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서서히, 천천히 고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에 뒤덮인 머리, 눈가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
민수를 보자마자 다시 울음이 치밀어 올라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민수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진우의 높이에 맞춰 서서히 무릎을 굽혔다.
“… 형 왔어.”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한 진우는 작게 속삭였다.
“… 형?”
“응, 형이야.”
바람이 한 번 더 스쳤다. 공터의 그네가 흔들리고 먼지가 천천히 흩어졌다. 진우는 마지막으로 형의 얼굴을 확인하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더니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민수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한 번 더.
한 걸음.
마침내 형과 동생의 그림자 둘이 흙바닥 위에서 포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