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해. 그래야 나 안심이 돼.'
아이가 이어 말했다.
'그래야 연결되었다고 느껴져.'
나는 물었다.
'무엇에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거야?'
(1편에 이어 시작됩니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는지 없는지 (주로 아이가 걱정될만한 안 좋은 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무슨 이유에서 이건 어머니에게 화를 내었던 아버지를 보며 큰 방 너머로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그것이 다툼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냥 대화인지 늘 귀를 쫑긋 세우고 모든 감각을 민감하게 항상 긴장 상태로 지내었던 내가 떠올랐다. 집에 있으면 늘 살얼음 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아이가 사건, 사고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어렸을 때 집 안의 분위기와 부모님 사이의 관계 상태가 어떠한지 늘 주시하던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IFS 내면 작업을 나에게 적용해 보면 지난 시간들 속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1.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무리 작고, 작은 속삭임일지라도 그 메시지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믿을 것.
2. 소자아(parts)들의 이야기를 머리로 추측하고, '이럴 것이다' 분석하여 그들의 메시지를 머리로 통제하며 혼동시키지 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 2가지 사항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통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머리로 분석하려는 마음이 끼어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작업할 때마다 늘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업을 할 때 들리는 소자아의 메시지를 머리로 추측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며, '받으려는(receiving)' 노력을 한다.
이번에도 그러한 추측 어린 분석이 일어나려고 했다. 아이의 사건, 사고에 대해 신경 쓰고 마음을 쏟는 모습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관계 상태를 살피는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고서 아이가 '연결'되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아... 그렇게 무슨 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일로 엄마 아빠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야...?' 하고 생각하려 했는데, 이것이 '맞다'(그 소자아만의 이유)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느낌, 미묘한 느낌으로 전해지는 내면의 이야기지만, 이것이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 아이, 소자아가 말하는 메시지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무엇을 통해 연결된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었던 거야..?'
아이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엄마 아빠에게 돌렸던 시선은 내가 그렇게 바라보면, 그만큼 나에게도 관심과 사랑이 올 거라는 마음에서였어..'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동시에 엄마 아빠를 바라보다 아무런 관심이 돌아오지 않자 굽어진 어깨로 무기력하게 뒤돌아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모습, 이미지가 내면의 까만 화면에 그려질 때면, 아직도 나는 이것이 아이의 그때의 모습을 나에게 전달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이의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 메시지를 이미지화해서 그려지는 상인지 잘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이유를 가려내기보다, 그냥 작업의 흐름에 따라가는 편이다.)
아이가 말하는 '연결'의 의미는 그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부모(특히 엄마)와의 마음의 연결을 바라서 엄마, 아빠를 찾았던 것이고, 궁금해했던 것이었고, 부모는 일상 속 늘 다툼과 다툼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기에 자신의 욕구는 어느새 방치된 채 부모를 바라보는 상태에서 멈춰있게 돼버린 것이었다. 아이에게 부모와의 연결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의미였고, 그 마음(욕구)은 현실 속에서 왜곡되어 버린 채 드라마틱한 관계 상태에 집중되어 버린 아이의 부모를 향한 관심이란 상태로 그 시절 시. 공간 속에서 멈춰있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