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2편에 이어 시작됩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왜 나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거지.. 나는 이렇게 신경을 쓰는데,,'
마음속에서 무심히 서있는 엄마와 엄마의 무릎 조금 위까지 큰 아이가 바짝 붙어 땅으로 고개를 떨군 채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아이는 아빠, 엄마 모두에게가 아니라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면 작업 중이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문장을 쓰며 불현듯 스치는 생각은, 내가 인터넷 속 가십-이슈적인 뉴스들에 시간을 쏟느라 정작 나 자신과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관심과 사랑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진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무기력하게 엄마 옆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사랑 없는 기다림은 더더욱 초조함으로 이어졌고, 그럴수록 엄마, 아빠를 향한 왜곡된 관심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다. 아니, 자신의 존재가 가치 없다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런 행동으로 가치 없음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늘 궁금했다.
내면 작업을 해보면 마주하는 소자아들의 공통적인 두려움에는 '자기 가치(self-wroth)'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상처받은 소자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면 소자아들은 늘 '내가 가치 없게 느껴져.', '나는 가치 없는 존재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편으로 사실 공감하지 못했다. 이는 나의 자아 중 극심한 고통과 분리되기 위해 만들어진 또 다른 소자아가 섞여서(blened, IFS 모델 용어)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의 마음,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받고 싶어..
나는 이 장면 속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왜 그렇게 무기력하고 당신 자신의 아이에게 무심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지 물어보았다. 마음속 그려진 엄마는 얼굴에서부터 힘이 하나도 없는 불행한 표정이었고, 자신 안에는 사랑(줄 수 있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마음속에 사랑이 없어도 아이에게 사랑이 담긴 마음을 줄 수 있어. 엄마.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란다.'라고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전해줘요. 아이는 그걸 알고 싶은 거예요. 자신이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아닌지."
엄마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진심을 담은 마음을 전달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 마음을 똑같이 두 손으로 소중히 받아 자신의 가슴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내면의 화면에서 빠져나왔다.
다음 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여느 날과 다름없이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창을 클릭했다. 북마크에 걸어놓은 가십 뉴스 페이지를 클릭하는 것이 아침 루틴 중 하나였으나, 나는 무언가 그 페이지를 보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았다.
내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들의 일이야. 너의 일이 아니야.'
메시지가 들림과 동시에 이전에는 나의 일부로 느껴졌던 누군가의 사건사고 뉴스들이 내가 알아야 할 일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더 이상 이슈 뉴스로 나의 머리를 일부로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며칠이 더 흐른 지금도 나는 그러한 뉴스들에 관심이 가지지 않는다.
앞으로 남는 시간 속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사랑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