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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핫쩡 Oct 15. 2021

그래서 MD가 뭐라고?

+MD의 직업병

 아니 그래서 MD가 뭐하는 사람이야? 이걸 딱 한 줄로 표현할 말을 아직 못 찾아서 구구절절 이 글을 써본다. 

 

 이커머스 MD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MD해요.”라고 답하면 두 명중 한 명은 들어는 봤는데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또 다른 한 명은 쿠팡, 지마켓 뭐 그런 오픈마켓 이야기까진 하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직업을 설명할 때, 나도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MD는 정말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로 MD를 “‘뭐’든지 ‘다’한다”의 줄임말, “‘뭐’든지 ‘다’ 판다”의 줄임 말이라고 한다. MD는 상품을 기획하여 판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만 맞다. 회사에 따라서는 기획 MD 영업 MD로 나누어 놓은 경우도 있고, 그 둘을 다 같이 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마케터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회사에서 하는 중요하지만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할 말이 없어 MD라고 명명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커머스 채널 MD로 일했고, 채널 MD로서 상품의 구성 정도는 기획했지만 상품 자체를 기획하지는 않았다. 잘 만들어진 상품을 찾아서 경쟁사보다 더 좋은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제조사나 브랜드사 혹은 벤더사를 영업하는 영업 MD로 일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내 직무 설명에 더 적합하다. 그래서 고객사를 입점시키기 위해 미팅을 하고, 전화를 하고, 메일, 문자, 메신저 등등 계속되는 제안을 하며 수많은 무시와 거절을 당하는 게 일상인 일을 했다. 그 어떤 직무보다도 성공과 실패,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쫄깃한 삶을 살아가는 직업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일이 직업이다 보니, 일과 삶의 온&오프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MD에게는 여러 가지 직업병이 있다. 


첫 번째는 쇼핑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다. 온라인 채널 MD로 입사하기 전에는 물건은 직접 보고 사야지!라는 신념으로 거의 대부분의 쇼핑을 오프라인에서 해결했다. 그러나 온라인 행사를 진행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가격차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오프라인에서 쇼핑을 맘 놓고 못하겠다. 사실 최저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직업인 터라 뭔가 같은 상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을 것 같아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조금만 더 검색해볼까?’라는 생각에 물건을 구매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든다.


두 번째 지름신의 도발적인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모니터링을 하면 서든,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해 서든 온라인 쇼핑채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MD들이 그러라고 만든 기획이고 그러라고 만든 가격인 줄 알면서도 구매 버튼으로 자꾸 손이 나간다. 우리 회사에서 번 돈 그대로 회사가 다 가져가는 것도 맞고, 다른 채널 열심히 지켜보면서도 내 지갑은 또 열린다.


세 번째, 맘 놓고 잠을 자거나, 맘 놓고 쉴 수 없다. 매일매일 자정에 오픈되는 새로운 행사들 덕에 밤 12시 이전에 잠을 잔 적이 없다. 12시 넘어 행사 검수를 하고 나면 잠드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불면증이 인생의 동반자로 추가되었다.


 휴가 때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휴가지만 담당 파트너사의 연락을 안 받을 수는 없고, 큰 맘먹고 놀러 간 해외여행지의 호텔에서도 행사가 잘 오픈되었는지 검수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지부터 확인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신혼여행을 가면서도 노트북을 꼭 챙겨가는 옆 팀 대리님의 긴 휴가는 어쩐지 별로 부럽지 않았다.  


 그래도 내 일에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생긴 직업병들이니 애정을 가져볼까 하다가도 가끔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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