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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주머니(2)

by 완소준

겨울이 돌고 돌아 다시 머무려 하고 있다.

여름의 생기 넘치는 냄새와는 다른 겨울만의 냄새가 있다.

거무스름하면서도 청량한 겨울바람은 마음을 저 아래로 가라앉히면서도 들뜨게 만든다. 괜히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서일까 왜인지 모르게 겨울엔 정이 가지 않았다. 차갑고 긴 어둠이 내게도 그을여질까 반갑지 않았다.


해가 짧아 낮도 짧은 게 심리적으로도 영향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겨울 방학은 길다 보니, 친구들을 오랫동안 못 보는 게 어렸을 때부터 싫었던 것 같기도 했다. 외동의 단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겨울에 마음이 아팠던 적은 많이 없다.

다사다난했던 일 년의 차분한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공존하기에 마음을 간지럽히는 좋은 기억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운 것들 투성이다.


연말엔 책이나 영화들이 항상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해리포터에 푹 빠져 따뜻한 방에서 초코책스와 함께 읽을 때 평화로웠고, 매해 연말에 개봉했던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난 후 헤어 나오지 못하며 푹 빠져있던 기억들이 아직도 그립다.


수험표를 들고 옷 사겠다며 이제 막 겨울이 입혀진 명동 거리를 친구들과 다닌 기억, 연말 입대 전 보람 있는 일을 하겠다고 요한이와 머리를 꽁꽁 싸매다가 결국 항상 게임하러 갔고, 피시방 냄새에 절여져 나와 들이마셨던 밤공기의 기억들도 여전하다.


위에서 먼저 말한 수능이 끝난 후, 입대 전 그리고 첫 신입 연수원 입소 전, 이직이 확정되고 연차를 소진하며 입사를 기다리며 근심 전부 내려놓고 마음껏 잘 수 있고 놀 수 있던 때도 전부 겨울이다.

이젠 먹고살아야 하니 저런 시기가 다시 오기 어렵겠지만 굉장히 그립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한 겨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민이와 쌓아나가고 있는 대부분의 추억과 여행들도 겨울에 많다. 2월까지 연차를 소진해야 하기도 하고, 민이도 1~2월이 제일 여유롭다.

연말을 핑계로 가끔이라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반가워서 좋고,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남도 항상 즐겁지만 연말엔 괜히 더 즐겁고 기분 좋다.

하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게 속상하다.


이번 글은 어찌 보면 똥글이고 어찌 보면 무의미한 감성글이다.

지난주에 축구와 한 잔을 마치고 먼저 집 가려고 헤어지는 길에 기호가 다음 브런치 글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을 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을 쓸만한 주제를 계속 찾고 있다는 핑계로 쓰지 않고 있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정말 떠오르는 주제가 없었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회사 생활에 대해 쓰자니 부담스러웠다.

요즘 새로운 업무로 배우고 있는 가상화 네트워크에 대해 쉽게 정리해 볼까?

아니면 개인적으로 개발을 다시 시작해서 과정을 적어볼까..?

아니면 매일 하는 상상으로 소설을 써볼까...?

아니면 기호가 본인에 대해 한 편 써도 되지만 좋은 이야기만 적으라는데 키가 2m인 거 말고 어떤 게 좋을까....?

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데...나는 뭘 하고 있지..?


자꾸 쩜쩜쩜만 많아지니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그리고 표현이 어려울 뿐이지 기호는 정말 좋은 사람이자 친구다. (나한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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