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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Mar 11. 2020

불행이 행운으로 변하는 순간

인생은 특별하게 변한다

                              

10년 전 아버지가 신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우리 집은 처음으로 무너졌다. 33년 직장에서 소처럼 일한 가장은 가혹하게도 신장 한쪽이 사라졌다. 그리고 배에는 흉터가 남았다. 



상실의 흔적




무너지고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무언가 억지로 없어졌다는 건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신장이 있든 없든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엄마와 난 몇 시간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생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를 지켜봤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지옥 같았다. 시간은 마치 기어가듯이 흘렀다. 혀가 말려가는 긴장감, 숨이 턱턱 막히는 공기, 불편한 의자, 하얀 벽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엄마는 옆에서 하나님을 쉼 없이 찾았다. 나는 엄마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동생 손도 꽉 잡았다. 모든 잡지 않으면 전부 놔줘야 할 것만 같았다.    




© Pexels, 출처 Pixabay




의사는 만약을 대비해 수술실 앞에 앉아있어달라고 했다. 만약을 대비한다는 말은 너무 무서웠다. 무엇을 대비한다는 건가?.



몇 시간 뒤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의사는 지친 기색으로 수술실에서 나왔다.


“열어봤는데 암세포가 많이 전이됐습니다. 아무래도 신장 하나를 들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서 나왔습니다.”


엄마는 고민도 없이 아빠의 신장을 없애는 것에 동의했다.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살 수만 있다면 들어내 주세요.”


그렇게 아빠의 일부는 아빠의 동의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빠는 침대에 누워 찡그린 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암세포는?" 아빠가 나오자마자 한 말이다.


“다 없앴대! 수술 잘됐대! ”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빠 앞으로 걸어 나와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빠 괜찮아?"





© judebeck, 출처 Unsplash





괜찮을 리 없는 아빠를 보고 물어본 딸의 순진한 안부가 그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를 보자마자 아빠는 앙다문 입술로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휘이 휘이 흔들었다. 집에 가라는 표시였다. 순간적으로 그가 눈물을 참는다는 걸 알아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걸 어색해했다. 언제나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강해야만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도 결국 무너졌다.



누구나 가던 길을 걸었던 아빠는 병을 얻었다. 수술실에 누워 있던 아빠를 지켜보면서 세상에 화가 났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빠는 왜 신장을 잃어야만 했나.  





© derekthomson, 출처 Unsplash




드라마에서나 봤던 새하얀 수술실 조명 불빛을 바라본 그는 수술실에 들어간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차가운 수술대만큼 자신의 인생도 풍요롭지 않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희생하고 살았던가.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는가? 자녀와 아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 진정한 인생을 살았던가.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사와 사랑을 전달했는가. 내 장례식장에는 누가 와줄 것인가. 마취가 들기 직전 그는 한 가지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만약 내가 잠에서 깨어난다면 내 것으로 가득 찬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아빠는 상실의 흔적으로 수술 자국을 얻었지만 그 후, 새 삶을 얻었다. 죽음을 마주 보았고, 인생의 후회를 돌이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아픔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렇게 그는 불행이 행운으로 변하는 순간을 잡았다. 




© zoltantasi, 출처 Unsplash





현재의 불행을 행운의 징표라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의미를 찾을 때 특별한 진짜 인생이 시작되며 불행은 행운으로 변하게 되고, 나만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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