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실 소설 '순례주택'을 읽고
최근 선우용여와 이명화(랄랄의 부캐)가 이태원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 것으로 알려진 선우용여는 '이태원 건물주'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https://youtu.be/YanBh_byM5U?si=wRbMcxY4ft9LFHu3
이태원에서 대대로 살았던 선우용녀의 어머니는 집안 소유의 건물에서 "셋돈을 많이 받지 말라"라고 하셨다고 한다. "우린 가만히 앉아 세를 받는데, 저 사람들은 노력해서 주는 돈이니까 많이 받으면 힘들다."는 이유였다. 엄마께서 유언으로 "내가 죽더라도 세를 많이 받지 말라."라고 남기셨고, 불자인 선우용녀는 건물에서 세를 줄 때 그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랄랄은 방송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부캐 이명화 캐릭터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랄랄은 월세를 많이 살다보니 건물주에 대한 PTSD가 있다고 한다. 건물주의 갑질을 겪은 후, 광고촬영을 하다 본인이 분장한 모습을 보고 자주 보던 어떤 아줌마와 닮았음을 느꼈다. 그때 '502호? 쓰레기를 왜 거기다 버려요?'라는 대사로 지금의 이명화가 나왔다고 한다. 이명화의 노래 '진짜배기'를 들어보면 '월세내세요 찾아갑니다 진짜 502호!'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처럼 이명화는 선우용여와 사뭇 다른 캐릭터이다.
이 영상을 보면서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읽고 있던 유은실 소설 '순례주택'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 책은 같이 모임을 하는 작가님들의 추천으로 선정한 청소년소설이다. 그래서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증정받아 읽게 되었다.
소설 제목의 '순례'는 건물주인 402호에 사는 김순례(75세)의 이름에서 따왔다. 순례주택은 순례씨가 혼자 아이를 키우며 유능한 세신사가 되어 번 돈으로 지었다. 마흔다섯 살에 구舊 순례 주택(순례 주택 자리에 있던 1층 양옥집)을 샀다. 그 집을 때를 밀어 주고 번 돈으로 샀기 때문에 '때탑'이라고 불렀다.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때탑 시세가 배로 뛰고, 도로를 확장한다고 시에서 마당을 잘라가면서 보상금을 받았다. 순례씨는 꽤 많은 보상금을 받고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십년 전 때탑을 허물고 필로티 구조의 4층 건물인 '현現 순례 주택'을 지었다. 임대료는 시세에 따라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필요한만큼 받았다. 그래서 인기가 높아 입주하기가 힘들었다. 근처 음식짐 사장님께서 "순례 주택 들어가는 게, 장기 전세 붙는 것보다 어렵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책 속의 이야기는 거북중학교 3학년인 수림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순례씨는 수림이가 어렸을 때 키워준 것을 시작으로 인연을 이어왔다. 수림이가 순례'씨'라고 부르는데서 둘의 관계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으리라. 내가 뽑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 구절을 적어본다. 찾아보니 출판사에서도 이 구절을 선택해서 기분이 좋았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 '순례주택(유은실 저, 비룡소, 2021)' 53p에서 발췌
착한 건물주인 순례씨가 이야기한 내용은 "나는 진짜 어른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진정한 어른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화두는 소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입주민의 인생을 통해 형상화된다. 순례주택 1층에는 상가 하나와 주차장, 2층부터 4층까지 집이 2호씩 있으며 본인 거주지를 제외하고 세를 준 상황이다. 옥상에는 입주민과 공유하는 전망이 좋은 옥탑방이 있다. 같은 주택에서 입주민들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준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돈'이다. 결혼을 할 때 제일 큰돈이 필요한 곳이 '집'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더 필요한 것이 '돈'이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첫째 아이를 낳았던 집에서 7년 동안 같은 전세금에 살 수 있어서 둘째 아이까지 비교적 맘 편히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착한 건물주의 세입자라면 거주와 사업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함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인생을 바뀌는 시점은 잔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느낄 때라고 한다. 스스로 애써 일하며 따수운 마음을 가진 건물주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내 이름을 딴 공간에서, 사람들을 품어 키워주는 모습을 상상한다.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다. 글을 쓸 때 한자 한자 애쓰며 적어봐야지. 이런 걸 느끼게 해 줘서 감사해요. 작가님들. 곧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