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진혁 Jan 13. 2022

새해에는 좀 유한 사람이 되어볼까 생각했다.

직설적 말고 다정적

대낮에 친구를 잠깐 만났다. 잠시 시비 거는(이라고 쓰고 ‘장난치는’이라고 읽는다.) 후배의 카톡에 “담에 만나면 뼈 저격 예약.”이라고 보내는데, 옆에서 힐끗 보더니 “넌 뼈 저격이 아니고 ‘해부’ 아님?”이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자주 ‘프로팩폭러’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에는 ‘좀 신선한 표현 없냐?’고 일갈했는데, 신선한 한방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일전에 인스타 스토리에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주제를 올린 적이 있다. 이때 이 친구가 나를 가리켜 소개팅 시켜준 여성에게 애프터 신청을 안 했다며 눈이 더럽게 높다는 폭로(?)를 한 일이 있다. 그때가 언제 적 이야긴데 그 사건에 이어 오늘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를 상기해보면 엄청 예쁘고 직장도 좋은 동생이라며 소개를 받았더랬다. 성격은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건 만나보고 겪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이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순진하게 그 말도 옳다 싶어서 소개를 받고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는 첫 만남부터 지각을 했다. 도착할 때까지 전화 한 번 안 하고 늦을 것 같다는 말도 안 하고 그렇게 딱 30분 즈음이다.


평소 지각이 잦은 탓에 사람에게 좀 기다리는 정도의 서비스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누가 늦어도 기다리면서 할만한 게 많아서 정신없이 바쁜 경우가 아니면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안하무인 앞에서는 좀 예민하게 나오는 편이다. 내가 애석해야 하는 건지 그녀가 운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하필 그녀가 그런 유형이었다.


여성: 여자가 30분 늦는 건 기본이라는데, 상관없죠?


...오 마이 갓, 늦게 온 건 괜찮은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어디에 두고 오셨을까. 것도 너스레 떨자고 하는 말도 아니고 저렇게 다큐멘터리한 표정으로 저게 가능하다니. 게다가 그런 말은 거기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내가 너스레로 할 말 같은데.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황작: 그건 여자로 보이는 사람에 한해서 해당하는 말이잖아요?


이 한마디에 붉으락푸르락했던 그 여인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튼 좋자고 만난 거니까 밥은 먹었는데, 계산을 하고 난 뒤, 나는 여성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은 족히 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 더치페이는 하는 게 매너이니까 차는 제가 살게요.


...그 매너 아까 늦게 왔을 때 보이지 여기서 찾다니... 골치 아프다 싶었던 나는 결국 그 소개팅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말았다.


나: 마음도 안 맞는 사람에게 뭐하러 차까지 대접하고 시간 쓰나요. 그냥 들어가시죠.(필요없고, ㅂㅂ!)


그 일이 있은 일주일 뒤,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그녀에게 전화로 세 시간이 넘도록 내 욕을 듣는 수고를 해야 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이후 애프터고 뭐고 카톡 한 번 보내지 않은 나의 싸가지까지 걱정하셨다고.


그 주선자 녀석은 식사 계산을 할 즈음만 되면 항상 이런 말을 해서 밥을 사게 하는데, 나는 그냥 “내 얼굴이 원빈이 아니라서 더 모욕적이셨나보다.”라며 웃어 넘기곤 한다.


밥이야 누가 사든 산다지만 자꾸 들으면 내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고, 어째 요즘은 직설적이기보다 좀 유약해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새해인 만큼 변신 가능하겠지? 아닌가..? :p

이전 05화 결국 우리는 비슷한 사람과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으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