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곁을 내어준다’라는 말을 쓴다. 친구 간에도 그런 사이가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혼에 비해 연애할 때 ‘진짜 사랑’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진짜 그랬던 사람도 있는데, 안 그런 경우도 많다. 사실 진짜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아무나 만나도 큰 문제가 생길 즈음에는 정리하면 됐기 때문에 별로 지독한 기억이 없어서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독한 기억이 있는 사람을 진짜 사랑했다고 말할 리는 없으니까.
소위 ‘갔다 올’ 생각으로 결혼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결혼은 연애할 때 만났던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상식적으로 옳고, 문제가 생겨도 서로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과 오래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다.
연애를 많이 해보는 것도 상대방을 다루는 ‘스킬’에는 영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데엔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개인의 성적 만족도 정도로 ‘갈아치우듯’이 만나는 사람이 항상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가면서 연애하는 사람보다 훌륭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다. 남자나 여자가 결혼을 할 때 일반적으로 보는 것들이 의외로 결혼생활 지속에 별 도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연애용’, ‘결혼용’으로 나누는 것도 별 소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온 사람들에게는 절망스럽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람 인생이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데, 연애할 때 겉만 보고 연애하던 사람이 대뜸 결혼할 때가 된다고 사람 속을 들여다볼 능력이 생길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지 않느냐고 하는데, 열 길 물속에 관심 두는 사람이 열 길 물속 제쳐두고 내 속에만 관심 갖는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끼리끼리 모이고 친구하고 사랑하므로 인연은 거울이다.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만나 닮아가는 거다.
안타깝지만, 사실 사람을 만나는 데 진짜 중요한 걸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곁을 내어준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가늠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