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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혁 Dec 31. 2021

'곁'을 내어주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곁을 내어준다’라는 말을 쓴다. 친구 간에도 그런 사이가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혼에 비해 연애할 때 ‘진짜 사랑’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진짜 그랬던 사람도 있는데, 안 그런 경우도 많다. 사실 진짜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아무나 만나도 큰 문제가 생길 즈음에는 정리하면 됐기 때문에 별로 지독한 기억이 없어서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독한 기억이 있는 사람을 진짜 사랑했다고 말할 리는 없으니까.


소위 ‘갔다 올’ 생각으로 결혼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결혼은 연애할 때 만났던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상식적으로 옳고, 문제가 생겨도 서로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과 오래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다.


연애를 많이 해보는 것도 상대방을 다루는 ‘스킬’에는 영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데엔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개인의 성적 만족도 정도로 ‘갈아치우듯’이 만나는 사람이 항상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가면서 연애하는 사람보다 훌륭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다. 남자나 여자가 결혼을 할 때 일반적으로 보는 것들이 의외로 결혼생활 지속에 별 도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연애용’, ‘결혼용’으로 나누는 것도 별 소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온 사람들에게는 절망스럽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람 인생이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데, 연애할 때 겉만 보고 연애하던 사람이 대뜸 결혼할 때가 된다고 사람 속을 들여다볼 능력이 생길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지 않느냐고 하는데, 열 길 물속에 관심 두는 사람이 열 길 물속 제쳐두고 내 속에만 관심 갖는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끼리끼리 모이고 친구하고 사랑하므로 인연은 거울이다.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만나 닮아가는 거다.


안타깝지만, 사실 사람을 만나는 데 진짜 중요한 걸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곁을 내어준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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