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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혁 Dec 15. 2021

용서한다는 것과 응징한다는 것

나를 망치지 않는 방향으로의 용서와 응징

용서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어릴 때 나는 용서라는 게 미덕인 줄 알았다. 때문에 넓지도 않은 품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좋든 싫든 용서로 잊고 살았다. 나이가 든 이후 드는 생각은 '타인이 구하지 않은 용서를 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듯 나쁜 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이를 테면 타인이 내게 잘못하여 원한을 갖거나 응징하겠다는 것, 앙갚음을 하겠다거나 보복하겠다는 식의 생각은 나쁜 것이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굳이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안고 살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원한을 갚기 위해 시간 투자를 안 하면 스트레스랄 것도 없다. 그냥 스스로가 더 잘 되기 위해 노력하고 사는데 최선을 다하고 살면 그만이다.


아무 생각 없이 괜히 덤볐다가 더 얻어 맞는다거나 상대방이 구하지도 않은 용서를 하는 것에는 어디 스트레스가 없는가.


내 경우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으로 타격을 잘 입지 않는 편이다. 상대방으로부터 타격 주기를 조심스럽게 굴기도 하지만 타격을 주더라도 타격이라 느끼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타격은 되받아칠 수도 있다.


상대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 되면 되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 타격은 무던한 기억 정도로 두는 편이다. 원한을 되갚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이러니 별로 스트레스도 없다.


받은 타격을 되돌려줄 순간에서도 반드시 되갚는 게 아니다. 이걸 되갚아도 상대방에게 타격이 크지 않을 것 같으면 선심을 써두어 상대방의 경계를 풀어두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되갚아서 재기불능의 타격을 줄 수 있으면 절대 덕을 베풀지 않는다.


이런 일은 되갚아도 스트레스인 방향으로 행동해선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반격에 내 피해가 적지 않거나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낳도록 하는 등의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을 향해 무딘 칼을 빼내드는 경우 그렇게 된다. 잘 갈아진 칼로 급소를 겨누어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싸움은 내 손을 안 거치면 뒤탈이 없고, 내 손을 거쳐 피해를 입힌들 공개적으로 데미지를 입혀야 망신을 당할까 두려워 재보복할 의지를 꺾을 수 있으며 다른 상대방에게도 경각심을 줄 수 있어 많은 싸움을 줄일 수 있다. 거기다 이유있는 보복과 힘있는 응징은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명분을 주기도 한다.


용서란 용서의 효과가 일어나는 쪽에 써야한다. 용서를 구한 사람 앞에서나 너그러워질 일이고, 설령 먼저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도 내가 먼저 손길을 내밀어 반성할 것 같은 사람에게나 도량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나쁜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듯 좋은 게 꼭 좋은 것도 아니다. 마냥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으로 인해 할퀴어진 자신을 스스로 더 할퀴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망치는 응징도 하지 않지만 나를 망치는 용서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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