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사랑론
살다보면 깊게 파고들어봐야하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나는 작가이자 강연자로서 대중강연에서 사랑에 관해 말해야할 때가 있다. 그리고 종종 몇가지 문장에 관해 청중과 논할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일 때가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이들 문장에서 따르는 다음 생각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나를 사랑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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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으로는 상대방 직업이 뭐고, 연봉이 얼마며, 키가 몇인데다가, 몸매가 어떻고 등의 기능적인 거 말고 그냥 딱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타인을 한번이라도 더 사랑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여기에 비추어 보면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받을 줄만 아는 사람에게 줄 것이 없고, 줄줄 아는 사람이 받을 줄도 아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사랑 받는 법을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의 사랑이라도 받을 수 있으며 좋은 사람의 사랑 역시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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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정말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남에게 미움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되려 남들의 사랑을 받으니 그가 다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즉 그런 사람이 타인의 축복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한다는 말의 역설이다. 사랑의 시작이 서툴다고 한들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해야 나도 타인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사랑은 계속적으로 부피가 커지고 순환이 이루어진다.
미움을 사는 사람이 누굴 사랑해 줄 여유가 있는가. 축복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누군들 사랑하지 못하겠는가. 타인의 사랑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이 남도 그렇게 사랑할 줄 알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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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거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에게 거래가 아니어서 받고만 있지말고 사랑이 거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 사랑과는 사랑으로만 거래한다. 이 거래에 다른 요소가 들어오면 그게 사랑이었는지, 사랑의 값어치는 변함 없었는지 돌아보는 일 밖에 남을 것이 없다.
결국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기에 남에게도 좋은 사람이 맞고, 또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나를 사랑할 줄도 알기에 내게도 좋은 사람이 맞다. 확실하다.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야 생명력을 갖듯 사랑도 자신이 갖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 때 그 값어치를 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랑을 주고 받으면 서로 이자를 포개어 낼 테니 그 값어치는 더 커질 테다. 그런 커다란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라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누가 그들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