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무례하거나 상식 이상의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대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간 일이 많다. 누구라도 화를 낼 법한 상황을 그냥 웃고 지나가버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꼭 뒤에서 묻는다.
"화 안 났어요?"
에이, 왜 안 날까. 그릇을 넓게 봐주셨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도량을 가졌으니 당연히 화가 난다. 그걸 참을 생각이 있어서도 아니고, 용서가 되어서도 아니며, 바보라서 그냥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망각의 축복'을 받지 않은 이상, 나는 상대방이 구하지 않은 용서를 스스로 할 생각은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적당한 시간을 두면 나도 냉정한 판단을 할 만한 시간을 벌고, 그 사이 상대방에게 의미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묵직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나 때도 기다릴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잊어버려지면 더 좋다.
어줍잖게 칼을 빼들었다가 더 큰 피해를 입는 거야 말로 바보라서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대개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대상이 가진 콤플렉스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괜히 즉각적인 대응으로 상대방의 콤플렉스를 건드려봐야 상대방이 뉘우칠 생각도 못하게 만들지 않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다.
"그거, 그분의 콤플렉스 탓 아닐까요."
콤플렉스가 들킨 사람은 수많은 약점을 노출한다. 이게 파악이 되면 무례한 상대방을 대응하는 것이 바짝 수월해진다. 시일이 지나 상대방의 요구나 요청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도 상대방이 할말이 없고 때에 따라 내가 필요한 걸 이야기 해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참는 거 아니면 난리, 둘 중 하나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다혈질이든 잘 참는 사람이든 분노를 참는 것은 아직 안 터진 화산과 다르지 않다.
감정은 참을 일이 아니라 선택하는 거다. 감정을 선택하는 일은 로봇의 일이 아니다. 로봇은 감정이 없고 요즘에나 있다는 로봇의 감정도 심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언제 상대방의 사과를 받으면 되는지, 언제 화를 내면 되는지, 언제 화해하면 되는지를 고민하고 베스트한 답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덜하다. 속도 시원한데다가 뒤끝도 없다.
강연장에서 가끔씩 하는 말이 있다. 감정이 되게 '테트리스' 같은 거라는. 관리를 안 하거나 속도에 끌려다니느라 조각이 안 맞으면 구제불능으로 망한다. 그렇지만 관리를 잘해서 속도를 제압하여 잘 끼워 맞춘 감정은 반드시 원하는 걸 얻는 방법으로 나를 이끌어 가게 되어 있다.
이것은 '약아져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강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은 자신과 주변으로부터 평화를 유지하게 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조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