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는 칼

나는 당신에게 칼이 아니라 애정을 겨누고 싶다.

by 황진혁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몇 년 전, 딱 한 번 방송 토론 출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나올만한 주제라고 생각하셔서 연락을 주신 것 같은데, 당시 나는 큰 고민 없이 죄송하다는 말로 사양했더랬다.


지금의 내 나이는 정말 애매하다. 어린 나이라고 말하면 누군가에게는 어린 게 아니라 어려지고 싶은 주책바가지로 보이고, 나이 들었다고 말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어설픈 애늙은이로 보기 때문이다.(여기서나 저기서나 일관되지 못하게 말하는 건 스스로에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여하튼 지금도 젊은 나이지만 젊다 못해 어린 그때,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선택은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과거 토론 프로에 청년 패널 출연 사례를 봤을 때, 말을 잘하면 건방지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점잖게 가만히 있으면 웬 ‘듣보잡’이 나와서 멍 때리고 있느냐고 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그때의 선택이 후회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다행한 일이다.


강연장에 가면 종종 달변이라는 칭찬을 듣곤 했다.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치밀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준비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저렇게 스피치가 활동에 적지 않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간혹 가까운 사람 중에는 괜히 논쟁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경우 어떡하냐면, 그냥 듣는다. 작정하고 한번 꺾어보겠다는 표정으로 대화가 맞는지 모를 대화를 거는 사람은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할 뿐이다. 이기는 걸 원하면 ‘응, 네가 이겨’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본인이 뿌듯하건 말건 주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또는 본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이 칼보다 무서울 때가 있는데, 그런 칼이란 가까운 사람에게 대는 게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