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희한한 화법을 구사하곤 한다. sns를 통해 약간의 존재가 알려지다 보면 주변에서 '카더라통신'이 돌 일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생기는 편인데, 하여튼 이 경우에 말이다.
살다 보면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말도 들어보지 않고 카더라통신에 의해 내가 평가되고 상대방으로부터 관계의 거리를 설정당할(?) 때가 있다. 그러다 우연히 사석에서 만나 당시 카더라 통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계기가 생기면 나는 "그 일 저한테 물어는 보셨어요? 그 일에 제 입장은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반대로 카더라통신에 관해 궁금한 나머지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나는 거꾸로 "그 일을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해명을 해야 할 문제인가요?"라는 반문을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들리게 말하는 것도 적절한 타이밍을 통해서 가능하듯, 객관적인 사실을 객관적인 사실로 들리게 말할 때도 적절한 때가 필요하다.
그래야 카더라통신의 진원지도 찾아 적절한 응징 여부를 놓고 칼자루를 쥘 수 있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과나 반성을 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첫단추를 올바로 꿰어야 다른 단추도 올바르게 꿸 수 있듯, 첫마디부터 올바른 말이어야 상대방에게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개인의 소문에 민감하여 학교생활을 접었던 후배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처음 '작은 사회'로 들어왔으니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도 잘못이 없는 일에 일일이 해명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생기고, 나는 진실을 말했는데 그게 변명으로 들리게 되어 오해를 양산하는 상황이 되는가 하면 내 입장을 말해야 할 때도 제대로 된 말 한번 못 꺼내고 몰리는 일도 많다.
내 경우 학창시절 이후지만 대학시절부터 오래 알아온 친구가 언제부턴가 연락이 닿지 않은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내게 악감정을 가진 타인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내 친구에게 전했던 것이다.(ex: 친구 따윈 필요 없어)
화가 났지만 나는 금방 냉정을 찾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일에 말을 전한 사람의 주장이 있고, 너의 판단도 있는데, 내 입장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내가 친구 따윈 필요 없다고 한 말은 진실을 가려봐야겠지만 네게 내 입장 따윈 필요 없다는 건 서로가 확인 한 것 같다"며 자리를 떴다. 여기에 나처럼 대놓고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그랬겠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말이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인 만큼 제일 변명처럼 들릴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수년 만의 연락이다. 본인이 옹졸했다며 사과를 했다. 당연히 이제는 그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카더라통신을 전한 사람의 잘못은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그 사람과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대개 '소문'이란 누군가의 뒤끝이다. 뒤끝에 대한 대응은 뒤끝 없이 마무리 짓는 것이 옳다. 내용에서 눈치 챘겠지만 말은 화술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의 문제이다. 즉 내 감정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