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요즘 출간되는 도서들이 그렇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미움 받을 용기’ 등 그런 제목들로 세상에 나와 있다. 이런 영향을 받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연장에 서면 나도 유사한 주제로 고민하는 청중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아직도 사람은 사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으니 나와 타인을 위한 고민은 언제라도 해봄직하고 또한 적절하다.
무례한 사람을 계속 만날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Yes"다. 물론 계속 얼굴을 봐야하는 사이에 한해서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기도 바쁠 걸, 싫은 사람까지 보려고 애쓰는 건 수고로움일 테니까.
일단 내 쪽에서 무슨 죄를 진 것이 아니라면 피할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라는 말도 하지만 그건 피해질 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상하구조로 놓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피하는 쪽보다 더 가까이하는 방법이 좋다. 일단 가까워지면 더는 무례하기가 어려우니까 말이다. 반대로 내가 가까이 한들 상대방이 가까워지려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어색함을 느낀 상대가 당황한 나머지 경계를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계속 무례함을 겪거나 꾸준히 눈 밖에 나는 쪽보다는 경계 받는 방향이 더 편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위치가 대등하면 더 편하다. 사람이라는 게 정신병이 있지 않고서야 이유 없이 무례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간혹 이유 없이 무례하게 구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주의하기로 하고.)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
싫은 사람이랑 밥도 먹어보고 말이다. 밥이 넘어가느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어차피 내가 먼저 싫어한 게 아니라 상대가 먼저 싫어한 거니까 밥이 안 넘어가는 것도 이쪽보다는 저쪽이 더 심할 것 아닌가. 만약 몇 번이나 “밥 같이 먹자”, “이야기 좀 하자”고 했는데, 안 먹겠다고 하면 내 편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다 한 것으로 끝내면 된다.
이후부터는 뒤에서 욕을 할 필요도 없지만 뒤에서 하는 욕조차도 아까워진다. 눈앞에서 뭘 해도 내 잘못이 아니니까. 경멸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니고, 무시를 해버려도 내 잘못이 아니고, 꾸짖어도 내 잘못이 아니다.
다만 훌륭한 방법 하나를 잊지 말아야 한다. 너그러움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량을 보이는 편도 한 방법이기는 하다. 너그럽다고 달라질 사람이라면 무례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그렇지 않다.
약은 사람과 속이 좁은 사람은 다른 부류다. 약은 사람에게는 너그러움을 보인다면 자칫 바보로 취급받을 수 있지만 속이 좁은 사람에게는 작은 도량을 보여 놓고 생색낼 것이 아니라 그 좁은 마음이 열릴 때까지 그릇을 넓게 펼치면 상대방도 더는 버틸 수 없다.
이 방법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다. 잘 먹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하면 사람 속의 넓고 깊음이야 상대적일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겪고 보면 약은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이 더 많기에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결론은 그런 거니까.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지만 사람 때문에 무너져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요약,
1. 윗사람이면 더 가까이 간다. 친해지면 다행이니까.
2. 안 친해져도 상대방이 당황해서 경계상태인 편이 무례보다 낫다.
3. 위치가 대등해도 일단 다가간다. 속 이야기를 나눠본다.
4. 상대방이 거절하면 내 쪽에서는 예의를 다 한 거다.
5. 이후부터는 경멸도 무시도 꾸중도 내 잘못이 아니다.
6. 너그러움도 방법이다. 웬만하면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