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강과 희락, 그리고 차희의 이야기 1
키 : 184cm라고 본인에게 들었음
얼굴 : 엄청나게 잘 생김
직업 : 플로어 리스트
나이 : 30대 중반
별명 : 꽃을 든 남자
성격 : 1. 착하고 2. 다정하고 3. 마음이 무지무지 예쁨
장점 : 1. 웃는 모습이 멋있음 2. 목소리가 너무너무 좋음 3. 운동 잘함 4. 손이 크고 따뜻함 5. 어린이와 잘 놀아줌
단점 : 거의 없음??? (딱 하나 있다면... 아직 결혼을 못해봤다는 거?)
제 몸만 한 가방을 짊어지고, 어깨를 축 늘인 채 첫차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희락. 땅만 보고 걷는 아이의 모습은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첫차 밖. 주방 쪽 유리창을 씩씩하게 닦던 이영이 잠시 멈추고 아이의 모습을 바라봤다. 평소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에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 꺾는 이영.
“희락이 유치원 다녀오는구나?”
지나던 걸음을 멈추고 희락이 이영과 눈을 마주 봤다. 늘 반짝이던 눈빛에 생기가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곧 아이의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에...”
이영이 쥐고 있던 마른걸레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손을 탁탁 털며 첫차 쪽으로 가볍게 고갯짓했다.
“잠깐 들어갔다 갈래?”
어깨에 둘린 가방끈을 양손으로 만지작하며 잠시 망설이는 희락. 곧 아이의 고개가 작게 끄덕이며 첫차 쪽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아이의 작은 힘에 가게 문이 스르르 열리자, 촤르릉- 맑은 드림캐쳐 소리가 희락의 머리 위로 차분하게 흩뿌려졌다.
첫차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듯 BAR 스툴에 힘주어 올라가 앉는 희락. 그 모습에 이영의 입가에 백합을 닮은 옅은 미소가 걸렸다. 참 많이 컸구나, 싶은 생각에.
제 키보다 한참은 높은 스툴에 앉아 그저 두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 때 희락은 깊은 고민이 있다는 어떤 무언의 표현이었다. 잠시간 아이의 달랑이는 두 다리에 시선을 맞춘 이영의 머릿속에 이런 문장들이 흘러들었다.
깊은 고민. 나이를 불문하고, 성별도 불문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그런 것. 7살 어린 저 아이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단지 세계관이 다른 것일 뿐.
그래서 ‘한 사람’을 두고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모든 고민의 깊이를 알 수 없듯이, 지금의 자신 역시도 7살 저 아이의 ‘깊은 고민’의 세계관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일지라도, 쉬운 편견으로 속단하지 말 것.
생각의 꼬리를 끊어낸 이영이 아이에게 일상을 건넸다.
“뭐 마실 거 주까?”
물음에, 아이의 눈빛에 평소와 같은 일상의 빛이 서렸다.
“싸장 이모! 나 오늘 우유 한 잔이 격하게 필요해요!!”
그 순간, 픽- 이영이 얼굴에 낮은 웃음이 번졌다. 경쾌한 아이의 목소리가 마치 어떤 악기와도 같은 맑은 선율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곧 희락의 앞으로 하얀 액체가 담긴 잔이 놓였다.
“오늘은 싸장 이모가 삽니다”
희락의 눈이 일순간 초롱하게 반짝였다. 그러더니 비장하게 우유가 담긴 잔을 들고 꿀꺽꿀꺽 원샷을 한다. 다 마신 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 희락. 허연 액체가 희락의 윗입술 주변에 번져 있었다.
“(손등으로 쓰윽 우유 잔재 닦으며) 으허! 이제야 살 것 같다!”
푸스스. 이영의 입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희락. 이름처럼 인생에 기쁘고 즐거움이 넘쳐 주변까지 예쁜 빛으로 물들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오늘을 물들이고 있었으므로.
“그래, 오늘 우리 꼬마 아가씨를 이렇게나 괴롭게 한 건 뭘까?”
“사실은요오...”
쭈뼛쭈뼛하다 옆에 놓인 가방을 열고 뒤적이는 희락. 웬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영 앞으로 스윽- 내민다.
“이거 때문이에요”
아이가 내민 종이 안에는 한 사람에 대한 여러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나이라던가, 직업이라던가,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쭈욱 읽어 내려간 이영이 희락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거, 너네 아빠야?”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는 희락.
“근데 이게 왜?”
작고 통통한 입술을 오물대다 입술을 여는 희락.
“우리 유치원 쌤이 진짜 진짜 지인-----짜 이뿌거든요? 그래서 우리 아빠 소개해주려구 그랬는데...”
말끝을 흐리는 아이의 문장을 이영이 그대로 받아서 이었다.
“그랬는데?”
“다음 달에 결혼하신대요...! 내가 얼마 전에 남친 있냐구 물어봤을 때 없다구 했으면서.. 치이---”
아이의 얼굴이 부루퉁하게 부풀었다 내렸다.
“이모! 우유 한 잔 더 주세요!”
“음.. 안 돼. 너무 많이 마시면 배탈 난다 너.”
“(칫) 오늘 같은 날은 두 잔 정도는 마셔줘야 하는데...!!”
솔직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이 결국 이영의 얼굴에 미소를 드리웠다.
그 시각. 한 손에 하이얀 칼라릴리 한 송이를 든 한 여자가 심드렁한 손짓으로 첫차의 문을 열었다. 촤르릉-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드림캐쳐의 맑은 울림이 내려앉았다.
또각또각, 여자의 무심한 표정과는 다른 경쾌한 스텔레토 하이힐 소리가 이영의 귓가를 울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트는 이영. 무감한 시선이 여자가 들고 있는 칼라릴리로 향했다.
“오늘은 또 다른 꽃이네? 칼라, 였던가?”
자신의 손에 들린 꽃을 이영의 시선만큼이나 무감하게 내려보는 여자.
“이 꽃, 아시네요?”
작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는 이영.
“오늘은 일찍 끝났네? 차희 씨.”
그녀의 입에서 짧은 숨이 하- 하고 뱉어진다.
“아. 오늘 파혼 소식 들었어요.”
파혼. 이영이 혀 끝에 맴도는 단어를 속으로만 삼키며 차희를 쳐다봤다.
“뭐라더라. 결혼식이 다다음주 거든요? 근데 신부가 바람이 났다나 뭐라나. (휴우)”
순간, 희락의 시선이 차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이영의 시선이 희락에게 꽂혔다. 다시 차희의 시선은 희락에게로. 세 사람의 시선이 트라이앵글처럼 선을 이루었다.
그 몇 초의 시간이 마치 억겁의 그것처럼 질기게 시선을 끌고 밀어내며. 결국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차희였다. 여전히 시선은 희락 쪽에 둔 채 입술의 말이 이영에게 향했다.
“여기 미성년자도 출입이 가능했던가요?”
웬 아이냐는 끝말은 맺지 못한 채였다.
칼라릴리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이영.
“그거, 매번 요 앞 상가 1층 꽃집에서 사죠.”
끄덕끄덕. 근데 그게 왜? 눈빛에서 차희의 마음을 읽은 이영이 올곧게 시선을 맞췄다. 마치 이것으로 답이 되었다는 듯이.
“뭔데. 그렇게 보기만 해서 내가 어뜨케 알아.”
슬쩍 뾰족하게 대꾸하는 차희와 달리, 픽- 짧은 웃음을 뱉는 이영.
차희는 다시 한번 희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두 손으로 턱을 바치고 두 다리를 달랑달랑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혔다. 그제야 이영이 답이 보였다. 아, 그런 거구나. 그 남자의 딸이구나.
순간 차희의 머릿속에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사한 미소가 참 멋지다고. 꽃을 어루만지는 길고 하얀 손가락이 참 우아하다고도. 그렇게 자신에게 이 꽃 한 송이를 건넨 ‘그 남자’의 모든 움직임이 퍽 다정하다고. 그러다 이내 머리를 절레, 흔드는 차희였다. 지금 무슨 생각을.. 정신 차려, 윤차희. 딸이 있는 남자야. 큼큼. 멋쩍은 듯 괜히 목을 가다듬으며 분위를 전환하는 차희.
“싸장. 나 커플 매니저 실격이에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정작 남의 짝만 만들어주지, 나는 못 만들잖아요?”
"그게 오늘 그 꽃을 선택한 이유? 그건 꽃말이 뭔데요?“
휘이-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린 차희가 입술을 뗐다.
"부활."
커플 매니저? 커플?? 커어플??? 멍하니 손을 턱에 괸 채 있던 희락이 번쩍! 하면서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아 차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모. 짝 만들어주는 일 해요?”
깜짝이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차희가 희락이를 쳐다봤다.
“이, 모..? (그래, 뭐 그렇다 치고) 그건 왜 묻는데?”
희락의 눈빛이 다시금 반짝거렸다. 그리고 언제 우울했냐 싶게, 자신이 만든 아빠의 프로필을 불쑥, 차희 쪽으로 내밀었다. 희락이 건넨 종이를 쥐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차희.
“이게, 뭔데?”
희락이 경쾌한 목소리를 냈다.
“이모! 우리 아빠 짝도 좀 찾아주세요!”
깊은 고민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듯 산뜻한 얼굴의 희락, 아이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차희, 그리고 그런 둘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영.
세 사람의 시선 사이로 조금은 낯선 바람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낯설지만 설레는. 조금은 들뜨고 깊은 고민의 흔들림이. 그리고 시작과 눈맞춤의 그 경계에서.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아야 돼.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조용필 ‘바람의 노래 ‘